새터민 캐디 “한국 교복 너무 예뻐 탈북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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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10년째인 캐디 김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가명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사진도 옆모습을 원했다.

캐디 김지영(26·가명)씨가 가는 곳에 얼추 골프공이 있었다. 양쪽 눈 시력이 모두 2.0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6년 전 정착한 20대 김지영씨
“시력 2.0 … 공 러프 빠져도 다 찾아
캐디 일 잘하려 골프 배우기 시작”

 김씨는 북한 이탈주민이다. 10년 전인 2005년 겨울 북한군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너왔다고 한다. 그는 “16세 사춘기 때 한국 여학생들의 교복이 너무 예뻐 너무나 먼 가출(탈북)을 결심했다”며 웃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09년이다. 북한을 떠나 중국과 동남아를 3년여 동안 떠돌았다.

 몽골 사람들은 눈이 좋다. 북한 북쪽 끝인 두만강변에 살다 온 김씨도 눈이 밝았다. 공이 러프로 가도 못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 김씨는 “기본적으로 눈이 좋아 볼을 거의 보지만 혹시라도 놓친 경우 열심히 뛰어다니며 찾으면 된다”고 했다. 경력이 6개월에 불과하지만 그린 경사도 잘 봤다.

 김씨는 다른 북한 출신 캐디 한 명과 함께 골프존 안성 W골프장에 근무하고 있다. 골프존과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자 정착을 돕기 위해 지난 봄 20명을 교육했는데 4명만 수료했고 현재는 2명만 남았다. 골프존은 현재 2기를 뽑고 있다.

 한국의 캐디는 쉬운 직업이 아니다. 클럽 여러 개를 들고 몇 시간 동안 뛰어야 한다. 몸이 힘들 뿐 아니라 머리도 많이 써야 한다. 서양 골퍼들은 동반자 4명의 거리 등을 일일이 계산해 클럽을 갖다주는 한국 캐디에 감탄한다. 골프존 관계자는 “탈북자들은 평등 의식이 강해 손님을 응대하는 데 적응 못 해 그만둔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김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능력이 되면 골프를 할 수 있고, 능력 안 되면 못하는 거라 생각한다. 처지에 맞게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잘못되면 캐디 탓, 잘 되면 자기 덕으로 생각하는 손님들이 밉살스럽기도 하지만 골퍼래서가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런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고 했다. 김씨는 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캐디가 나에게 딱 맞다. 수입도 나쁘지 않아 다른 북한 이탈 친구들에게도 권유할 생각”이라고 했다.

 골프도 배우기 시작했다. “골프를 해야 골퍼 심리를 알고 캐디를 하기에도 유리해서”라고 말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집과 땅을 장만하는 것이 김씨의 꿈이다. 이후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다. “고향이 많이 그립죠. 요즘 남북 이산 상봉을 보면서 고향이 부쩍 더 그리워요. 가족 못 만나는 게 서러워요”라고 말했다.

안성=글·사진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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