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 명 가난서 해방시킨 ‘적정기술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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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폴 폴락이 20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세계과학정상회의]

‘적정기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폴락(82) 윈드호스 인터내셔널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적정기술’ 보급에 힘써 방글라데시 등 11개국에서 1700만 명을 빈곤에서 탈출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19일 대전시 컨벤션센터에서 시작된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에서 발표자로 나섰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누구나 쉽게 배워 사용할 수 있고 에너지 소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 친화적인 기술로 ‘착한 기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폴 폴락 윈드호스 대표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에 참석
방글라데시 등 11개국에 펌프 보내

 체코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무렵 나치의 침공을 피해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갔다.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던 그는 83년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비영리 기구 ‘국제개발사업(IDE)’을 만들었다.

 “정신질환으로 장기간에 걸쳐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는 가난과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난을 내쫓지 못하면 정신병도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IDE 설립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IDE 설립 동시에 방글라데시로 갔던 그는 “가난을 떨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궁금했다. 농촌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하루 2달러(2250원) 미만으로 생활을 했다. 땅은 충분한데 지하수를 퍼내는 시설이 없어 갈수기에 농사를 짓는 게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폴락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발을 굴러 작동시키는 물 펌프를 개발했다. “25달러(2만8000원) 수준의 저렴한 펌프였지만 이마저도 없는 농부들에겐 추수 이후 값을 치르는 조건으로 줬다. 펌프가 보급되자 1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태양광 발전기를 이용한 펌프를 보급했다. 그는 때에 맞춰 새로운 적정기술을 개발했다. “태양광 발전기 효율을 높이려면 태양을 쫓아 움직이는 모터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면 제품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하루에 3번씩 발전판을 회전시키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발전 효율을 9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싼 가격에 많이 파는’ 전략으로 IDE는 수익을 낸다. 수익은 새로운 적정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2005년 세계적인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그를 ‘과학에 기여한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폴락은 적정기술의 성공 요인으로 현지화를 꼽았다. 북한에 필요한 적정기술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 가본 적이 없어 대답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현지에 가보면 그들이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가서 주민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기술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20일 이틀째를 맞은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과학기술 장관회의’가 열렸다. 21일에는 미래 10년간의 세계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담은 ‘대전 선언문’이 나온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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