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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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7면

한자학의 권위자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1910~2006)는 『한자의 세계』에서 한자는 고대부터 현대를 걸치며 만들어진 “역사의 통로”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歷史)의 역(歷)은 역(?)과 지(止)로 이뤄진 글자다. 역(?)의 ‘?’은 벼랑이다. 두 개의 ‘禾’는 벼랑 아래에 자리잡은 군대 진지(陣地)의 정문 좌우에 서 있는 나무다. 지(止)는 발자국이다. 군사행동을 위해 왕래한다는 뜻이다. 군사행동 중에서 공적을 조사하는 것이 역(歷)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다’는 뜻이 됐다. 사(史)는 제사용 그릇(口)을 손에 쥐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선조에게 올리는 제사 자체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을 뜻했다. 이후 ‘제사의 기록’으로 의미가 변했다.


청(淸) 말의 개혁 사상가 공자진(?自珍, 1792~1841)은 『고사구침론(古史鉤?論)』에서 역사의 권능(權能)을 높이 평가했다.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그 사(史)를 제거하라. 그 문방(門枋)을 허물고 기강(綱紀)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史를 제거하라. 그 인재를 끊어버리고 그 교육(敎)을 근절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史를 제거하라. 그 조종(祖宗)을 쓸어버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 史를 제거하라.”


지난해 가을 전국 역사학대회의 주제는 ‘역사서술의 권력, 권력의 서술’이었다. 당시 기조강연에서 이성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명(明) 말의 대학자 왕부지(王夫之, 1619~1692)를 인용했다. “사람은 천하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만 마음을 배우고(師心), 옛 것을 배우고(師古), 하늘을 스승 삼는 것(師天)보다 가장 절실한 것은 사물을 배우는 것(師物)이다.”


이 교수는 “(왕부지는) 객관적 실체에 대한 학문과 인식을 강조하고 동시에 역사의 절대적 권능을 부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역사의 남용과 타락의 방지책은 ‘역사의 권력과 그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의 전체 지식 체계 안에서 그 정당한 위상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사 교과서가 다시 국정화된다. 왕부지·공자진·이성규 세 학자를 되새긴다면 슬기로운 해법이 나올 터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 기자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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