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소비자 이익’은 안중에 없었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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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블랙프라이데이에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으신다’. 14일 끝난 한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이 행사는 정부가 ‘쇼핑 코리아’ 붐을 일으켜 내수를 살리자며 야심차게 기획했던 관제 유통행사였다. 정부는 ‘행사로 소비가 살아나고 있으며 0.2%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며 홍보전을 폈지만 실제 백화점 등 유통가에선 국경절을 맞은 중국인 유커들을 제외하곤 쇼핑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원래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주된 품목은 패션·대형가전·명품이다. 이들 품목에서 70~90% 대폭적인 가격할인이 이뤄진다. 한데 이번 행사에 가전과 명품은 참여하지 않았고, 패션 할인도 제한적이었다. 백화점마다 70% 이상 할인하는 품목은 행사매장의 재고상품뿐이었다. 대개는 일부 품목에 한해 10~30% 할인하는 미끼품목 세일이었다.

 유통질서를 무시한 관제 행사로 실패가 예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기획의도였다. 정부는 이 행사에 대해 내내 ‘내수진작과 경제성장률 제고’만을 외쳤다. 유통행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인 ‘소비자 이익’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도 구체적 전략도 없었다. 다만 물건 팔아 돈을 벌겠다는 목적만 앞세운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신상품을 팔아야 하는 10월 초에 정부가 밀어붙인 할인행사에 온갖 꼼수할인을 내놔 소비자를 실망시켰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정신은 ‘박리다매’다. 유통업체들이 마진을 포기하면서 소비자 이익을 구현하는 것이다. 한데 우리나라는 시즌아웃 기간에도 대형 할인율은 적용하지 못한다. 유통업체가 수수료를 포기하지 않아서다. 실제로 그나마 이번 행사에서 소비자 이익을 높이고자 했다면 백화점이 수수료 일부를 포기하고 총 판매량을 늘려 이익을 소비자와 나눴어야 한다. 한데 백화점도 소비자와 이익을 나누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업체와 소비자가 이익을 나누는 축제여야 한다.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킬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