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신들린 끝내기 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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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절정의 계산력을 보이는 나이는 과연 언제일까. 이창호의 계산력도 퇴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지난 13일 벌어졌던 이창호9단 대 유창혁9단의 패왕전 결승3국이 이런 의문부호를 던졌다.

이날의 승부는 유창혁9단의 승리. 끝내기에서 따라잡아 역전 반집승을 거두며 3대0으로 이창호를 눌러 생애 24번째 우승이자 첫 패왕에 올랐다.

유9단은 지난달 이세돌7단을 꺾고 KT배에서 우승하며 슬럼프 탈출에 성공하더니 여세를 몰아 또하나의 우승컵을 추가했다. 근래 송태곤4단과 함께 가장 잘나가는 기사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끝내기 역전승이 화제가 됐다. 종반에 접어들었을 때만해도 바둑은 백을 쥔 이창호9단의 여유 있는 우세. 따라서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대 유창혁의 역전이란 전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신들린 듯 계속 따라붙은 유창혁9단의 반집승. 마치 두 기사의 역할이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이창호9단은 16세 때 이미 신산(神算)이란 별명을 얻었다. 종반에 들어설 무렵이면 반집의 우열을 알았고 미세한 바둑이면 백발백중 승리했으며 중요한 고비에서 수많은 역전 반집승을 기록했다.

끝내기에서 이처럼 무수한 신화를 만들어낸 이9단이 끝내기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전자들은 28세 이창호의 계산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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