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만 신경 쓰네요” 역차별 느끼는 한국쇼핑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기사 이미지

지난 6일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에 있는 ‘중문 번역서비스’ 코너에 중국인 방문객들이 모여 있다.

“중국인이 너무 많아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어요.”

중국 국경절 기간 21만 명 입국
쇼핑업체 중국인 관련 매출 급증
소음, 공중도덕 문란에 불만도 늘어

 지난 6일 오후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만난 40대 주부 이지현(면목동)씨의 말이다. 중국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맞아 한국을 찾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로 이곳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씨는 “중국인들이 에스컬레이터나 통로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세 번이나 부딪혔는데 사과도 않고 가버렸다”며 불쾌해했다.

 김지은(35·목동)씨는 이날 한 의류매장에서 맘에 드는 옷을 입어보려다 중국 단체 관광객과 마주치고는 쇼핑을 포기했다. 김씨는 “중국인들은 내 물건이 있는 탈의실에 막무가내로 들어갔다”며 “백화점 직원들도 그들을 상대하느라 우리 일행에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서 중국인이 없는 다른 백화점에 가려고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김모(삼성동)씨는 “매장에 중국어 안내문, 중국인 직원 등 중국인을 위한 서비스가 많아졌다”며 “중국인 관광객을 잘 대해야 하겠지만 반대로 중국인에게만 신경 쓰고 내국인의 쇼핑 편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씁쓸해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국경절 연휴에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21만 명이다. 지난해 16만3000여 명에서 30%가량 증가했다. 덕분에 쇼핑업체들의 매출은 껑충 뛰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10월 1~5일 중국인 매출은 지난해 국경절 대비 48.1%, 신세계백화점은 32.1% 신장했다. 강남을 거점으로 하는 갤러리아백화점과 현대백화점도 각각 20%, 28.3% 올랐다. 거리 매장을 운영하는 올리브영은 9월 26일~10월 4일 명동·가로수길·홍대입구 등 주요 관광상권 50여 개 매장의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늘었다.

 유커로 인해 유통업체들은 웃고 있지만 한국인 쇼핑객들의 불만은 커져 가고 있다. 쇼핑몰 내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가방이나 몸을 부딪치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등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행동 때문이다.

 최근 유커들의 관광명소가 된 신사동 가로수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커들이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매장 앞에 버리고 가거나 쇼윈도 앞에 여러 명이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모습에 대한 불만이 많다. 수입의류매장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4~5명씩 몰려다니는 중국인들이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를 그대로 쇼윈도 앞에 버리고 침도 뱉는다”며 “뭐라고 해도 못 알아듣겠다는 듯 태연하게 중국어로 몇 마디 하고는 가버린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커를 박대할 순 없다. 유커의 씀씀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의 1인당 구매액은 2012년 약 100만원에서 올해 200만~250만원으로 늘었다. 쇼핑 형태도 백화점 명품 중심에서 가로수길이나 홍대앞 문화를 한국인들과 함께 즐기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역차별을 당한다고 느끼는 일이 늘고 있지만 내수 경제에서 차지하는 유커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를 받아들이고 갈등을 줄일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