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외국인에게도 ‘씨’자를 붙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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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근 TV를 보면서 외국인 존칭 사용에 대해 의문이 든 점이 있었다.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아서 패터슨의 재판 기사를 보도하면서 ‘패터슨 씨’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는 것이었다.

 외국인에게도 이렇게 존칭을 붙여야 할까? 한국에서는 존칭이나 경칭이 다양하게 쓰인다. 성인이라면 ‘씨’자를 붙여 호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은 직장 등에서 ‘님’자를 붙여 쓰기도 한다. ‘군’ ‘양’ ‘선생’ ‘여사’ ‘옹’ 등 그 밖에도 다양한 존칭이 경우나 상황에 따라 사용된다.

 그러나 외국은 다르다. 영어 등 서양 말에도 ‘미스’ ‘미스터’ ‘서(sir)’ 등 존칭이 쓰이지만 우리처럼 발달해 있지는 않다. 존칭 사용에서는 우리보다 엄격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따라서 우리가 3자로서 그들의 이름을 부를 때 ‘씨’자를 붙여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더욱이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는 특이성이 있다. 언론매체는 다중인 독자나 시청자를 대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어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인 경우 대체적으로 직함이나 ‘씨’자를 붙여 호칭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정치인·연예인·운동선수는 물론 일반인도 객관성을 살리기 위해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내국인이 이럴진대 굳이 외국인에게 ‘씨’자를 붙이는 것은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다. 직함이 있으면 이름 뒤에 붙이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 ‘씨’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언론에서 굳어진 외국인 표기법이다. 이는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씨’자를 붙이면 헷갈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매카시 씨’ 등처럼 발음으로는 이름과 존칭의 구분이 혼란스럽거나 불편한 경우가 생긴다. ‘오사마 빈 라덴 씨’라고 하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결국 외국인에게 ‘씨’를 붙이는 것은 꼭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혼란스럽고 비경제적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 범죄 혐의자인 ‘패터슨’을 ‘패터슨 씨’라 부르는 것은 거부감이 드는 일이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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