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국면을 간명하게 보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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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본선 32강전 C조> ○·박영훈 9단 ●·스 웨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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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보(80~89)=프로들마다 기풍이 다르고 기질도 다르지만 계산력이라면 박영훈이 독보적이다. 이창호가 ‘신산(神算)’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로 전성기를 누릴 때는 ‘소신산’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박영훈이 ‘신산’이다.

 우변에서 들여다보고 스웨가 잇지 않고 밀었을 때 끊지 않은 이유를 물었는데 박영훈은 ‘너무 복잡해져 뒤를 알 수가 없어서…’라며 말꼬리를 흐리고는 흐흐, 웃었다. 박영훈은 낙천적이다. 바둑판의 형세를 낙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상위의, 인간적 기질이 그렇다.

 문득, 오래 전 ‘나는 끝없이 생각한다. 생각하다가 정리하지도 못하고 그냥 실수하고 망한다. 가지치기를 잘하는 고이치(라이벌 小林光一) 씨가 부럽다.’고 했던 비관파 조치훈의 토로가 생각난다.

 일류프로의 조건 중 하나는 국면을 간명하게 보는 눈, 정리하는 힘이다. 조치훈이 말한 수읽기의 ‘가지치기’도 그런 뜻인데 ‘알 수 없어서 안전한 길로 물러섰다’는 박영훈의 흐려버린 말꼬리에서 그런 간명한 눈이 느껴졌다.

 84면 중앙 85로 흑도 모양이 잡힌다. 여기서 백A, 흑B로 틀을 갖추게 해주는 건 맥 빠진다. 86의 두터운 꼬부림. 87의 반발은 기세인데 88에 ‘참고도’ 흑1로 버티는 건 무리다. 흑 5점이 이렇게 말려 들어가면 너무 크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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