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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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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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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다. 방미를 둘러싼 배경이 되는 한·미 유대 관계는 훈훈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극적인 이니셔티브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4월 방미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9월 방미보다는 미국 언론의 관심이 덜할 것이다.

 관심이 덜한 이유는 한·미 관계가 워낙 탄탄한 데다 박 대통령의 이전 워싱턴 방문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을 신뢰하며 한·미 동맹을 지지한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신뢰를 강화하려면 다음의 네 가지 영역에서 생각의 틀을 정리해야 한다.

 첫째, 방문 전체의 테마를 무엇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관료들은 ‘새로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거론한다. 한·미 양국이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우주 탐사, 기후 과학, 신기술 등의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새로운 프런티어’는 좋은 브랜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와 마찬가지로 서울이 새로운 사고를 창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공동선(善)에 기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아마도 한동안 서울의 관료들은 동북아평화협력구상(NAPSI)을 이번 정상회담의 주제로 삼으려고 한 모양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내부에서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특히 한·일 관계의 개선 없이 NAPSI가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또 NAPSI가 박 대통령의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왔다. 나는 NAPSI가 적어도 학자들의 포럼 형태로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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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박 대통령이 준비해야 할 두 번째 사안은 북한의 도발이다. 평양이 10일에 인공위성 발사 실험, 정확하게는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만약 북한이 실험을 감행한다면 이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박 대통령의 방미 보도는 이 문제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한편 북한의 발사 실험은 미국 대선 주자들로 하여금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하게 만들 것이다. 북한에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물렁물렁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워싱턴과 긴밀히 협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단호함을 입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외교의 문을 열어놓으려 할 것이다. 워싱턴은 북한의 도발이 없더라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북한 인권 상황 개선 같은 박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를 환영할 것이다.

 셋째, 박 대통령은 미디어와 만나거나 한·미 정상회담 발표문을 통해 중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는 높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중(對中) 접근법이 어리둥절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의 압력에 대한 우려를 워싱턴에 호소하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달라 보인다. 미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박 대통령 전략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변덕스러운 행태에 대한 베이징의 우려가 증가하면, 서울이 중국이라는 북한 문제 해결 수단을 확보할 가능성이 생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두 영역에서 미국의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서울의 대중 전략은 아직 이론 차원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다음 도발에 베이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본 후에야 이론이 실제로 증명될 것이다. 두 번째 우려는 박 대통령의 전략이 일본의 중요성을 떨어뜨려 서울과 워싱턴 모두에 부정적인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돌고 있다. 청와대가 한·미·중 정상회담을 이번 워싱턴 방문의 성과로 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한·일 관계를 현격히 개선하지 않고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하는 게 힘들 것이다.

 넷째, 미국인들이 박 대통령의 방미에서 관심을 가질 이슈는 박 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필사적으로 가입하려는 모습을 박 대통령이 보일 필요는 없다. 협정이 미 의회에서 비준되기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1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입은 차기 미 행정부의 이슈가 될 것이다. 다방면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구조조정과 규제완화에 집중하는 게 필요함에도 서울은 지나치게 중국의 경제 성장에 의존해왔다는 우려가 있다. 박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기초에 대한 믿음을 입증하는 한편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경제 성장의 궤적을 그릴지에 대해 설명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은 워싱턴 정가나 미국 전체에서 명망이 높은 위치에 있다. 역동적이면서도 꾸준하고 믿을 수 있는 한국… 바로 그것이 박 대통령이 다음주 워싱턴에서 조용히 투영할 수 있는 한국의 이미지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