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거북이 봉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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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마종하(1943~) '거북이 봉기' 전문

이제 때가 되었다고
거북이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오래 살 만해서 오래 사는데
왜 자꾸 건드리느냐.
모든 일을 천천히 하고
천 길 한없는 물 속에서
쉴 만큼 쉬고 잘 만큼 잤는데
왜 말들이 많으냐.
공간에 가까운 나의 시간을
시간에 가까운 나의 공간으로
잡아당기는 게 잘못이지
내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우주의 모래 속에
수천의 알 다시 묻으니
하얀 시간들이 까맣게 까놓는
새 공간이나 다시 보아라.



여태 '거북이'로 잘 지냈는데, '거북'이 표준말이라고? 주변 것으로 욕심 채우던 인간들이 이 느림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건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거다. 장수 비결? 느림의 철학? 종족 계승의 비밀? 유식한 체하는 질문들이군. 간단히 답하지. 거북이의 삶은 '시간의 공간화'다. 말이 어렵다고? 그럼, 모래펄에 묻은 수천의 알이 대신 대답해 줄 때를 기다려라!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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