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소외계층 돕는 진정한 봉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클럽의 문을 두드린 지 꼭 28년 만에 '최고 라이언(라이온스 클럽 회원을 지칭하는 용어)'의 꿈을 이뤘습니다. 물론 꿈을 이루게 돼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영광입니다만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아 더 기쁩니다."

이태섭(李台燮.64)라이온스 클럽 국제회장 내정자(현 국제 제1부회장)는 "젊은층과 여성을 회원으로 적극 받아들여 라이온스 클럽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회장이 되면 발표해야 하는 모토도 '미래의 문을 여는 혁신'으로 결정해 뒀다"고 말했다.

사실 李부회장은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네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에는 대우엔지니어링.풍한산업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을 경영했던 전문경영인이었다.

창업주나 대주주가 기업을 경영하는 게 당연시되던 1970~80년대였던 만큼 그의 출현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경영인으로 변신하기 전 그의 직업은 학자. 그는 60년대에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그것도 2년 반 만에 받았던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국회의원이었던 90년대 초 지역구 민원이었던 수서택지개발 청원을 제안하는 바람에 이른바 '수서특혜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런 李부회장이 다음달 4일 미국 콜로라도주(州) 덴버에서 열리는 세계총회에서 라이온스 클럽의 국제회장으로 선출된다. 임기는 1년. 선출이라고는 하지만 제2부회장.제1부회장을 거치면 회장이 되는 관행에 따라 이미 당선이 확정된 상태다.

한국인이 라이온스 클럽 국제회장에 선출되기는 59년 한국에 라이온스 클럽이 생긴 이래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아시아에서는 태국에 이어 두번째다.

라이온스 클럽은 17년 미국인 멜빈 존스의 제안으로 '지역사회와 세계 발전을 위한 봉사'를 이념으로 출범한 단체. 현재 전세계 1백91개국에서 1백40만명의 회원클럽이 모금활동을 통해 불우이웃 돕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특히 25년 라이온스 클럽 총회에서 맹아이자 농아였던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1880~1968)가 한 "시력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호소는 클럽이 시각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 라이온스 클럽은 전 세계적으로 개안수술 지원사업을 벌여 이미 3백50만명에게 '새로운 세상'을 찾아줬다. 李부회장은 제2부회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2001년부터 국제 회장단을 설득한 결과, 북한 평양에도 2004년 4월 완공을 목표로 4백80만달러(약 56억원)를 들여 안과전문병원을 짓고 있다.

"처음 북한 얘기를 꺼냈을 때 '그렇게 불투명한 나라에 왜 병원을 지어줘야 하느냐'는 회장단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북한을 돕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정부가 외골수라고 해서 국민까지 외면해선 안 된다'며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라이온스 클럽이 이처럼 크고 바쁜 '매머드급' 단체이다 보니 수장(首將)인 국제회장도 분주할 수밖에 없다. 이미 짜여 있는 1년치 스케줄에 따르면 李회장이 임기 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는 날은 고작 20여일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3백40여일은 회원국들을 돌며 진행 중인 사업을 일일이 확인하고 회원들을 격려해야 한다.

국제회장까지 내놓을 나라이면서도 국내에는 아직까지 라이온스 클럽에 대해 "돈 많은 지방 유지들의 사교모임이 아니냐"는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클럽이 비교적 늦게 생기는 바람에 홍보가 부족한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한다.

李부회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누구든 라이온스 클럽을 가장 영향력 있는 비정부기구(NGO)이자 봉사단체로 꼽는다"며 "우리나라 라이온스 클럽도 연간 2백50억원의 기금을 모아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나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만큼 라이온스 클럽 회원들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봉사자'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글=남궁욱,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