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차기 전투기 핵심기술 이전 불가 알고도 계약했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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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 군 당국이 지난해 차기 전투기(F-X)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를 선정하면서 핵심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도 계약했다고 한다. 우리가 요구한 25개 기술 중 21개는 곧 이전받을 예정이나 4개 핵심기술은 미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형전투기사업(KF-X)의 완성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만약 기술을 이전 받지못할 경우 자칫 ‘무늬만 한국형전투기’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KF-X 성공 위한 필수기술 못 얻어
한국형 ‘깡통 전투기’ 우려도 나와
변명보다 차질 없도록 대책 세워라

 문제는 미국이 기술이전 약속을 해놓고 뒤통수를 친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점이다. 계약 당시에도 이미 위상배열 레이더나 스텔스 기능 등 핵심기술은 이전 합의가 안 됐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국은 지난해 국감 때도 “절충교역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겠다”고 자신했었다.

 방위사업청은 논란이 일자 “4개 핵심기술은 이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담았었다”고 해명했다. 미국이 기술이전을 꺼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전투기 개발을 위해 필요한 기술인 만큼 꼭 얻어내기 위한 협상전술이었다는 건데, 그 조항이 명백한 의무사항도 아니어서 미국이 첨단기술을 넘겨주기를 기대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딱할 뿐이다. 결국 지난 4월 미 정부는 이전 불가 방침을 공식 통보했고,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애당초 계약을 할 때 기술이전이 안 될 경우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다른 반대급부가 가능하도록 명백히 했어야 했다. 기술이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가격을 조정하거나 다른 요구조건을 내걸었어야 했다. 우리와 같이 F-35 도입계약을 한 일본의 경우 자국에서 면허생산을 하고 아시아의 허브 정비창을 구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얻어냈다. 우리는 미국의 온정만 바라보다가 돈은 돈대로 내고 기술도 못 얻고도 계약 위반을 따질 처지도 못 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 기술이 KF-X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인 만큼 자체개발을 하거나 유럽 등에서 대체기술을 들여와야 한다. 막대한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실전배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만든 한국형전투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깡통 전투기’가 돼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미 중국이나 러시아 레이더가 F-35를 탐지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첨단기술 이전 계약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가뜩이나 대규모 방산비리가 꼬리를 무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우리가 자랑하는 고등훈련기(T-50) 역시 핵심기술을 이전받지 못해 수출을 하려 해도 매번 록히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 아닌가. 군 당국은 변명으로 일관할 생각을 하지 말고 대오각성해 KF-X 계획의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절치부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