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깍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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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4 면

MBC ‘일밤-진짜 사나이’는 관음증을 자극하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험한 훈련에 고생할수록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아지지요.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은 그래서 필수입니다. 이번 여군특집 3편에서는 래퍼 제시가 갈등의 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탓에 우리말도 서툴고 한국식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 떨어졌던 그는 제식훈련 도중 자진퇴소까지 고려할 정도의 위기를 맞습니다.


13일 방송에서는 화생방 훈련 현장이 나왔습니다. 제시는 정화통 분리를 제대로 못해 다른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쳤고 미통과자 전원이 재훈련을 받게 된 상황,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 이렇게 다시 실패하는가’ 싶은 순간, 그는 옆에 있던 배우 한채아의 손을 찾아 깍지를 끼더군요. 그 동작이 제게는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나 좀 꼭 붙들어줘’라는 비명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서로 그러쥔 손은 1초가 10년 같은 가스실의 고통을 결국 이겨내지요. 다들 화생방 실에서 무사히 나오는 모습은 후련한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제시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지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고비를 처음 이겨냈으니까요. 전미라와 김현숙의 격려도 빼놓을 수 없죠.


덕분에 그는 이후 포복 훈련에선 탁월한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으로 교관의 칭찬을 받고 급기야 다른 후보생들을 가르치기까지 하죠. 불량해 보이던 힙합 걸이 여전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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