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타임푸어(time - poor) 20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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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설을 맞아 부산 본가에 내려간 오세영씨(가운데)가 사촌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청춘들이 많습니다. 공부와 업무에 지쳐 정작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타임푸어(time-poor)’ 인생들입니다. 청춘리포트가 알바천국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20~30대(492명)의 24%가 하루 중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30분 미만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결과는 아찔합니다. 다들 무언가를 이루고자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정작 소중한 가족들과는 더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기사를 순서대로 읽다 보면 텅 빈 동그라미와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이 여백은 바쁜 일상에서 여유를 가지자는 메시지인 동시에 여러분이 시간을 소비하는 패턴을 진단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동그라미 위에 하루 일과표를 그린 다음 이렇게 자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루 가운데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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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오세영(24·여)씨는 바쁘다. 본인 표현을 빌리면 친구와 만나는 게 연례 행사일 정도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오전 6시에 시작되는 그의 하루는 다음 날 오전 1시나 돼야 끝난다. 하루 두 끼를 지하철에서 삼각김밥 등으로 때울 때도 많다.

 오씨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서울 혜화동의 한 케이블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는 늘 불안하다.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오씨 같은 비정규직 아나운서는 계약기간이 따로 없다. 방송 촬영 일정이 잡힐 때가 일하는 날이다. 수입도 들쑥날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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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씨는 촬영시간 외엔 주로 스터디를 하거나 학회에 참석한다. 더 안정적이고 여건이 좋은 정규직으로 이직하기 위해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스터디를 하는데 이런 스터디가 3개나 된다. 매일 오후 7시부터는 3시간가량 아나운서학원에도 간다. 학원에 가기 전에 짬을 내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한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오씨는 “경력을 쌓고 공부를 더 해서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며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늘 쫓기듯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씨는 ‘타임푸어 청춘’의 전형이다. 자기 계발 등으로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요즘 청춘 세대의 특징이다. 20대 대학생은 취직을 하기 위해, 30대 직장인은 더 좋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열하게 하루를 소비한다. 이들은 공부나 업무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남는 시간엔 학원 수업 등으로 자기 계발에 매진한다.

 세속적 의미에서 출세가 목표라면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청춘 세대의 대다수가 학업이나 회사 업무 등에 시달리느라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가족을 돌아볼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씨의 경우도 하루 24시간 중 가족과 소통하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에 10분 정도 카톡으로 부모님과 대화하거나 전화 통화하는 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전부”라며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가 본 지도 6개월이 넘었다”고 말했다. 24세인 오씨가 지금과 같은 패턴으로 계속 바쁘게 지낸다면 평생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국인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약 85세)을 기준으로 보면 오씨가 평생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약 154일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총량으로 치자면 오씨에게 불과 5개월의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이처럼 요즘 청춘 세대는 소중한 가족과 점점 멀어지는 걸 알면서도 바쁜 삶을 멈추질 못한다. 최악의 취업난과 직장 내 치열한 경쟁 등으로 ‘일상=생존 투쟁’이란 등식이 청춘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20~30대 청춘은 스스로의 일상이 지나치게 바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취업포털 알바천국이 2030 직장인 663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30%가 자신의 ‘타임푸어 지수’를 7~8점으로 꼽았다(※10점 만점. 점수가 높을수록 시간이 더 부족하고 바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는 뜻). 직종별로는 서비스 직종(9~10점)이 가장 바빴고 연구·개발·기획 직군이나 영업·마케팅 직군도 전체의 30% 이상이 7~8점을 꼽아 바쁜 직종에 속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1125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절반 이상(50.2%)이 자신의 타임푸어 지수를 5~8점이라고 답했다. 학년별로는 전체의 30%가 타임푸어 지수를 7~8점으로 꼽은 3학년이 가장 바빴다. 대학교 3학년 박상현(22·경기대 시각디자인학과)씨는 “여름방학이지만 취업 준비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눈코 뜰 새가 없다”며 “너무 바쁘다 보니 친구·가족 등 대인 관계에 소홀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족들도 아침식사 시간에만 잠깐 보는 게 전부”라며 “취업을 하기 위해 정신없이 지내지만 정작 가족들과는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종종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채승기 기자, 강해라·김유라 대학생 인턴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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