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웃기는 '경로당' 컴퓨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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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이 연 이틀 국민을 상대로 깜짝쇼를 했다.

지난 9일엔 당 대표를 뽑는 23만명의 선거인단 중 20대가 0.05%, 60대 이상이 43.9%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대변인은 "나도 깜짝 놀랄 정도"라고 했다.

당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경로당'이란 글이 쇄도했다.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하루 뒤인 10일 당 경선관리위는 전산 입력을 잘못해 생긴 일이라고 정정했다. 그 결과 선거인단의 연령별 분포는 20대 5.2%, 60대 이상 19.6%로 '정상화'됐다고 했다.

그러자 두번씩이나 국민을 놀라게 한 한나라당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컴퓨터 믿을 수 있겠어요? 경선 개표는 꼭 수작업으로 해주세요'라는 비아냥의 글들이 올랐다. 박희태 대표는 11일 "당에 엄청난 자해 행위를 한 결과가 됐다"고 침울해 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변화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은 한나라당에 진짜 변화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지난해 대선 패배 후 한나라당은 전자개표의 문제를 제기하며 재검표를 요구했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지난번엔 컴퓨터를 불신해서, 이번엔 컴퓨터를 맹신해서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컴퓨터 입력 잘못으로 만들어진 데이터가 발표될 때까지 당 지도부 중 누구 하나 이를 거르지 않은 데 대한 책임 논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당직자는 "다행히 선거인 명부상의 경로당 이미지는 벗었다"면서도 "하지만 하는 행태를 보면 경로당이다"고 말했다.

박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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