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1세기 상소문 '특별 우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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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14일 개최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회의에 참석한 2900여 명의 대표는 모두 몇 장씩의 흰색 봉투를 받았다. 이른바 '특별 우편'(사진)용 봉투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유력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온 특별 우편의 내막을 17일 처음 소개했다.

특별 우편은 전인대에 참가한 각 지역 대표들이 자기 고장의 부패 관료나 비리 행위.민원 등을 적은 뒤 이를 전용 봉투에 넣은 것을 말한다. 이 봉투는 중국공산당 중앙이나 전인대 최고 권력자인 상무위원장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점에서 '특별 우편'이라 불린다. 전인대 대표들에게는 보통 7~9장의 특별 우편 봉투가 배포된다. 봉투는 전인대 연락국에서만 접수한다.

특별 우편이 도착하면 당 중앙은 3개월 이내에 답을 보내게 돼 있는 게 내부규정이다. 중간에 거치게 되는 기관은 봉투를 열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중형에 처해진다. 각 지방의 민초들이 겪는 관료들의 횡포와 부패를 봉투에 넣어 중앙정부에 직접 전달하는 특별 우편은 상당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고 남방주말은 보도했다. 실례로 2000년 5월 허난(河南)성 한 지방 공안(公安.경찰)들의 폭행으로 억울하게 숨진 36세의 한 남자 이야기가 있다. 이 사연을 전인대 대표들이 특별 우편으로 전달, 관련 공안 요원들은 결국 사형과 무기징역에 처해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연락국에 접수된 특별 우편은 모두 160여 통이었다. 지방 관료의 부패와 부정 행위가 주요 내용이지만 정책 건의가 올라오기도 한다고 남방주말은 전했다.

신문은 "20여 년 전부터 사용돼 왔던 이 민의 전달 방식이 이제 제도로 거의 정착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만 장의 봉투가 나눠지는 것에 비해 회수율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별 우편은 명(明).청(淸) 시기의 상주문(上奏文:황제에게 올리는 글) 제도와 흡사하다. 명대 초에는 통정사(通政司)라는 전문기관을 두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모든 상주문을 관리했다. 상주문이 단 한 건이라도 황제에게 전해지지 않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통정사 책임자는 심한 문책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반 우송의 '역전(驛傳)'과 특급 우편 격인 '급체(急遞)'를 두고 상주문을 중앙에 올려 보냈다. 왕조 시기의 전통적인 민의상달 방식인 상주문 제도가 현대의 중국 공산당에 의해 여전히 운용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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