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건설 7차례 퇴짜 놓은 은평구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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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0여억원 규모의 서울 은평뉴타운 아파트(490여 가구) 건설 사업이 8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사업자는 “구청이 건축 계획 트집을 잡아 인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구청은 “업체 측에서 구청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문제의 주택사업지는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3-14블록이다. 중견 건설업체인 대방건설이 지난해 7월 시행자인 SH공사로부터 834억여원에 매입했다.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해 지난 1월 은평구청에 전용 59~84㎡형 493가구를 짓는 내용의 건축심의를 접수시켰다. 건축심의를 통과해야 사업승인을 받아 분양에 나설 수 있다.

 은평구청은 “신분당선 연장 계획이 수립 중이고 주변 개발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어 사업을 보류한다”고 대방건설에 통보했다. 대방건설은 뜻밖의 통보에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에 확인해보니 관련 기관으로부터 “해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대방건설은 건축 계획을 수정했지만 지난달까지 매달 열린 건축심의에서 모두 7차례나 부결됐다. 구청은 “구릉지 개념에 맞는 주거 배치로 건축 계획을 변경하라”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 등을 전면 재계획하라”는 등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은평뉴타운 같은 공공택지에서 이처럼 잇따른 건축심의 부결은 보기 드물다. 필지별 계발 계획이 이미 확정돼 있어 건축심의가 대부분 1~2회에 통과되기 때문이다. 대방건설은 구청이 은평뉴타운 개발 계획과 어긋나는 구청장의 선거 공약을 의식해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 당선된 구청장의 공약 중 하나가 해당 부지를 공원화하거나 유보지로 남기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주민이 “북한산 조망이 가린다”며 이 부지의 사업을 반대했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구청이 SH공사의 부지 매각 이후 건축심의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선거 공약을 알고 사업을 보류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선거 공약과 상관없다”며 “대방건설이 건축심의 요청 사항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방건설은 SH공사에 부지 매매 계약을 해제하고 아예 사업 포기를 검토했으나 계약금 83억원을 위약금으로 물어야 해 사업을 그만두기도 어렵게 됐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건축심의 때마다 달라지는 구청의 요구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며 “분양이 늦어지면서 매달 17억원가량의 금융비용만 손실로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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