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낮은 직원, 퇴출 전 재기 기회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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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의 윤곽이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을 통해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일 ‘직무능력사회 정착을 위한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 인사관리’라는 제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최근 법원 판례를 분석해 “사용자의 인사평가권은 공정성이 없으면 제한을 받아야 하고, 재량권을 일탈한 인사평가권은 사법심사 대상”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회사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퇴출시킬 목적으로 운용되지 않도록 인사평가에 대한 근로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직무 부적합자를 퇴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던 기업 인사운영이 전체 근로자의 역량을 이끌어내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이 근거로 제시한 판례는 올해 6월 24일과 2012년 5월 29일 대법원이 내린 판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7월 14일자 판정 등 세 가지다. 모두 저성과자에 대해서도 반드시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재기의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2012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A씨는 인사평가 결과 하위 1%에 해당했다. 회사는 그에게 다른 51명과 함께 역량강화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했다. 재기의 기회를 준 셈이다. 하지만 A씨는 교육에 수시로 불참하고, 업무수행보고서나 업무개선계획서도 안 냈다. 결국 A씨는 해고됐다. 나머지 51명은 회사에 계속 근무하거나 전직했다. 대법원은 “인사평가가 공정했고, A씨는 객관적으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각종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비위행위를 해 정당한 해고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은 노사정 대화 재개를 가로막아온 대표적 걸림돌로 꼽혀 왔다. 행정지침 형태로 제도화하려는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노동계 입장이 충돌했다. 그런데 이날 노동연구원 보고서는 정부가 그동안 제시해온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그대로 담았으면서 형식은 참고자료여서 주목된다. 정부가 노동계의 ‘가이드라인 폐기’ 주장을 수용하는 듯한 모양새는 갖추되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노사정 대화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얘기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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