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과 캐디 아빠, 마지막 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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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운정(오른쪽)이 티샷을 마친 뒤 캐디 백을 멘 아버지 최지연씨와 1번 홀을 나서고 있다. [이지연 기자]

20kg가 넘는 골프 백을 메고 딸을 따라다닌 지 8년. 2주 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에서 156전157기를 이룬 최운정(25·볼빅)의 아버지 최지연(56) 씨가 정든 골프 백을 내려놓는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최씨의 마지막 무대다.

 최씨는 지난 2008년 최운정이 LPGA 2부 투어에 데뷔하면서부터 캐디 백을 메왔다. 경찰관이었던 그는 딸의 꿈을 위해 천직을 잠시 접고 미국에 왔다. 그러나 딸이 1부 투어에 데뷔하면 복직하려고 했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최씨는 “운정이가 너무 어렸고, 경비도 부족해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캐디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LPGA 2부 투어 17개 대회를 포함해 176개 대회 내내 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켰다. 전문 캐디는 아니지만 최씨의 열정은 전문성을 뛰어 넘었다. 최씨가 코스를 직접 걸어 체크한 야디지 북은 캐디들 사이에서 족집게 야디지 북으로 통했고, 최운정의 LPGA 투어 첫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그는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듯 비바람 속에서도 코스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파악했다.

 최씨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경찰관 월급으로 해외여행 한번 하기 어려웠지만 딸 덕분에 호강했다고 말했다. 딸이 “아빠를 믿고 한번 해볼게요”라고 묵묵히 따라줬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고 했다. 최씨는 “제대로 된 캐디를 만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전문 캐디와 함께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씨는 형편이 어려운 경찰 출신을 돕는 일에 앞장서며, 제2의 삶을 살겠다고 했다.

턴베리=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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