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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수퍼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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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돈에 관해 왠지 짤 것 같은 일본. 그런 일본의 최고 연봉액은 166억 엔, 우리 돈 1560억원이다. 주인공은 소프트뱅크의 인도 출신 부회장 니케시 아로라(47)다. 지난해 9월 구글에서 영입돼 올해 3월까지 받은 돈이 이 정도다. 계약금 포함이라지만 부러울 따름이다. 창업자인 손정의 회장 연봉의 100배가 넘는다. 게다가 손 회장은 일본인이 아닌 아로라를 차기 회장으로 민다. 딱 하나, 능력만 보고서다. 아로라는 될성부를 기업을 찾아서 키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과잉 보수 논란에 손 회장은 “능력에 비해 싸다”고 그를 감싼다.

 이런 그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롯데그룹 말이다. ‘투 톱’이든 ‘원 리더’든 롯데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쪽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형제끼리 경쟁도 못할 건 없다. 단, 능력과 실적이 기준이 되면 된다. 그래야 승자도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형제 다툼에 입맛이 쓴 건 삼성·엘리엇 전쟁 직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뤄 놓고 풀지 않은 숙제가 있었다는 걸 알려 주는 듯하다.

 분명히 하고 갈 점은 있다. 특정 형태가 기업 지배구조의 정답이라는 주장은 강단에선 몰라도 현장에선 하나 마나 한 얘기다. 훌륭한 전문 경영인이 있지만 자기 실적을 위해 회사 미래를 저당 잡힌 전문 경영인도 있다. 임직원의 모럴 해저드를 막는 게 기업 소유주의 책무인데, 소유주의 모럴이 먼저 무너지기도 했다.

 손 놓자는 얘기는 아니다. 대기업 집단체제가 유의미한 것은 개발 연대에 효율적으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리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지금의 지배구조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걱정은 많지만 해법은 못 찾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탈출구는 하나다. 능력 있는 사람이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창의성을 지휘하는 자리에 서도록 해 주는 것이다. 잘못된 위계 때문에 숨죽이고 있는 수퍼 파워가 발휘되도록 하는 것, 이게 곧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이미 기업 내 부문별 책임자가 된 분들이 소신껏 일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일이다. 그들마저 눈치 보느라 못하고 있다면, 여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임직원이 누구나 창업자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정점이 총수인지 전문 경영인인지는 부차적일 뿐이다.

  이 점에서 익명을 원한 한 기업인의 얘기를 백번 공감한다. “똑똑한 공무원이 정부 조직에선 비전이 없다며 밖으로 나옵니다. 선배들이 위를 대하는 태도, 조직 굴러가는 방식을 보니 건설적인 일을 하긴 틀렸다고 느낀 거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그 회사의 최고 인재가 최대 능력을 발휘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책임자급에 있는 분들이 오롯이 창조적 해법에 고민하고 있느냐는 거지요. 능력이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줄이 세워지는 건 아니냐는 거지요. 그래서 지배구조가 중요합니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