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타인에 대한 연민, 그것이 세상을 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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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감정의 격동 1·2·3
마사 누스바움 지음
조형준 옮김, 총 1352쪽
5만5000원(전3권)

별로 심각하지 않은 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어머니는 20분 전 세상을 떠났다.

 저자인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0여 년 전 겪은 일이다. 그는 영국 더블린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고 대륙을 넘어 비행기를 타고 갔다. 비행기를 타기 전 꿈에서 어머니를 봤을 때, 비행 중 스튜어디스의 웃는 얼굴을 마주쳤을 때, 병원에서 쓸모 없어진 어머니의 유품을 봤을 때 그의 마음은 갖가지 감정으로 어지러웠다.

 누스바움은 자신의 감정을 세세하게 뜯어보며 인간의 감정 탐구를 시작한다. 감정은 대상(어머니)를 가지고 있고, 믿음(어머니는 돌아가실 것이다)을 전제로 한다. 또 감정은 가치(어머니의 소중함)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감정은 왜 생기는가.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 분석에서 시작한 작업은 범위가 넓어진다. 누스바움은 마음을 뒤흔드는 경험이 선·정의에 대한 사유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탐구한다. 연민·상상력이 법·제도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이성중심주의, 남성주의의 한계를 인간의 감정에 대한 철학적 수정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말이다. 또 법과 제도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지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법적 정의 또한 ‘엄벌’이 아니라 ‘인간적 정의’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시작해 철학·문학·음악을 넘나들며 법과 제도, 민주주의까지 감정을 통해 논의하는 책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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