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포자 60%인 교육으론 과학강국 어림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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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교육부가 오는 9월 개정교육과정을 내놓기로 한 가운데 수학 교육의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조사가 나왔다. 고등학생 10명 중 6명이 수학 공부를 단념한 ‘수학포기자(수포자)’라는 내용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학생과 수학교사 9022명에게 물어본 결과다. 초등학생 36.5%, 중학생 46.2%, 고등학생 59.7%가 스스로를 수포자라고 대답했다. 수학 교육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학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대입 비중이 커서가 아니다.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는 물론 인문계 학생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학은 어렵고 지루한 과목이 돼버렸다. 수학 교육이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본질이 아닌 ‘정답 찾기’로 왜곡됐기 때문이다. 수학 실력 국제 비교에서 한국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지만 흥미와 자신감은 하위권이라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수포자를 양산하는 구조는 익히 알려져 있다. 우선 고교 졸업 때까지 배워야 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학생이 배우는 내용을 한국에선 초등학생에게 가르치고, 외국 고교 과정을 한국 중학생이 배운다. 이 때문에 사교육과 선행학습이 판치고, 이는 다시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학 입시 제도는 이를 부채질한다. 의대처럼 수학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전공도 수학 점수가 높은 학생을 선호한다. 학생 수준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대입에 설정된 교육 목표는 수학을 처음 접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곧바로 문제풀이로 내몬다.

 이런 교육으로는 수학이나 과학강국을 꿈꾸기 어렵다. 무엇보다 수학 교육의 목표와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아인슈타인이 될 순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전공과 적성에 맞게 수학 교육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쉬운 수학과 생활수학 교육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개정교육과정에 이런 문제의식이 담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