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345억원 들여 만든 관제시스템 '불량'…"안전성에 심각한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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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345억원을 들여 만든 ‘항공관제시스템’이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상용화가 불가능한 부실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담당 공무원은 성능 미달 프로그램을 승인하고,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전 국토부 과장은 연구교수로 재취업해 2억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추진한 '항공관제시스템 개발사업'에서 부실개발과 조직적 비리를 확인하고 전·현직 공무원과 대학교수 등 8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1일 밝혔다.

국토부는 2007년 12월~2014년 6월까지 345억원을 들여 인하대학교 등과 함께 ‘항공관제시스템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항공관제시스템은 항공기 위치 및 운항정보 등 항공기 관제에 필요한 정보를 관제사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내 운용 중인 프로그램이 모두 외국에서 도입돼 비용 과다 지출 등을 막기 위해 자체 개발에 나섰다.

국토부는 2014년 6월 해당 프로그램을 완성한 후 “해외 수입에 전량 의존해 오던 항공관제시스템이 완전 국산화될 수 있게 됐다”라며 “초기단계부터 관제사 요구사항 반영 및 성능확인, 종합시험 등을 거쳐 완벽한 시스템으로 개발됐다”고 했다. 국토부는 “2015년 국내 200억원, 해외 1000억 규모의 사업에 대한 참여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결과 해당 시스템은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실 시스템이었다. 감사원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의뢰해 시스템의 안전성을 확인한 결과 자료의 이중처리로 시스템 과부하가 우려되는 등 시스템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 일부 서브프로그램에서는 100여개의 프로그램 오류가 확인됐다. 또 국제기술기준이 아닌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절차에 따라 개발돼 상용화에도 문제가 있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해당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항공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활용이 전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사업비 345억원을 날린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스템이 엉망으로 개발된 이유는 연구과정부터 시스템 검증 절차까지 유착과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연구를 책임졌던 인하대 A교수는 항공관제 분야 국제기술기준을 지키지 않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항공관제시스템은 장애 발생 시 대규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상용화를 위해서는 국제기준에 따라 개발돼야 한다. A교수는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 보고서를 제출할 때에는 해당 시스템이 국제기술기준을 만족하는 것처럼 최종평가보고서를 작성했다.

부실하게 제작된 프로그램의 성능을 검증하는 작업도 엉망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토부 사무관 B씨는 관제시스템 성능 검토 기관으로 인하공업전문대학(인하공전)을 지정하며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하공전이 성능적합증명 검사기관에 탈락하자 비협조적인 심사위원을 교체하며 적합 판정을 내줬다. 인하공전은 인력이나 시설이 미흡해 성능 검토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성능 검토 기관으로 선정된 인하공전은 해당 관제시스템이 국제기술기준에 만족한다는 검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검사를 진행한 인하공전 교수는 A교수와 사제관계였다. 담당 사무관 B씨는 해당 보고서를 TTA에 검토를 의뢰했다. TTA는 성능시험 내용이 부실해 시스템의 안전성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결과를 B씨에게 보냈지만, B씨는 이를 묵살하고 성능적합증명서를 발급했다.

국토부 공무원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뇌물을 수수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을 담당하던 국토부 전직 과장 C씨는 2012년 퇴직한 후 인하대 연구교수로 재취업했다. 이 교수는 관제시스템 개발사업의 연구원으로 참여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2억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C씨는 1400만원의 금품을 담당사무관인 B씨에게 줬다. B씨는 이밖에 총 2400만원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

사업에 참여한 업체 역시 45건의 허위거래를 이용해 3억30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횡령했다. 해당 업체는 인하대에서 설립한 벤처회사로 대표는 A교수의 제자였다. 박 교수와 업체 대표는 참여연구원 인건비 5665만원도 횡령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사요청 사안 외에 징계ㆍ시정 등 행정적 조치가 필요한 사건은 감사결과 확정을 위한 내부 검토절차 진행 중”이라며 “항공정보시스템 구축과정에서 공무원과 업체 등의 유착에 따른 구조적 비리가 확인됨에 따라 항공안전 기술개발과 시스템 구축 실태에 관한 후속감사를 곧이어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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