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김무성 통해 유승민 퇴진 압박 … 비박 재선 20명, 사퇴론 반박 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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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부권 정국이 더 복잡하고 지루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긴급최고위원회의 결과 당장 사퇴하지 않고 시간을 더 갖기로 하면서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해온 친박계 의원들은 재신임 여부를 묻는 의원총회 소집 같은 실력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는 데 앞장서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비박계 의원들은 시간을 끌면서 사퇴론의 부당성에 맞서고 있어 여권 내부가 세(勢) 싸움의 양상도 보이고 있다.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29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의원총회를 열진 않을 것이다. 김 대표도 의총은 안 된다고 했다”며 “오늘 김 대표가 ‘최종적으론 유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온 이정현 최고위원도 “당헌·당규에 원내대표 해임에 대한 규정은 없다. 거취는 정치적으로 결론 내릴 사안”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친박계 의원들은 일단 최고위원회의 결론대로 유 원내대표의 결정을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경론을 선도해온 김태흠 의원도 “유 원내대표한테도 숨 쉴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유 원내대표에게 공이 넘어갔으니까 어떻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지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일단 의총 소집요구서 제출은 보류했지만 만약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엔 ‘은혜를 모르는 유승민! 즉각 사퇴하라’ ‘박근혜 대통령 배신자 유승민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불법 현수막 10여 개가 내걸리기도 했다.

 반면 청와대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해온 김성태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나마 당이 파국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한 현명한 판단이었다”며 “당과 대통령을 생각한다면 다 같이 자숙하면서 유 원내대표가 많은 것을 생각할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도 “여당 의원이 뽑은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사퇴하라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정부 시절 때의 얘기 같다”면서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세연·김영우·김용태·박민식·신성범 의원 등 비박계 재선 의원 20명은 최고위원회의 전 원내대표 사퇴론을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원내대표는 당헌에 따라 의원총회에서 선출됐다”며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을 의원들의 총의를 묻지 않고 최고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의원은 최고위 결론 뒤 “의총 소집은 그 자체가 분열 요소가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며 “최고위에 앞서 재선 의원들이 낸 성명이 당내 여러 목소리가 있다는 참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사퇴 압박은 위헌”=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헌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이 ‘법안이 빨리 통과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은 의회의 기본 역할인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훼손하는 발언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인에 대한 심판을 국민에게 요구한 것도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위문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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