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변화 바라는 긍정 에너지 … 무력감 되지 않게 정책 반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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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빅데이터 분석 결과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의 마음에는 ‘바람’과 ‘수치심’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두 정서가 공존하는 이유는 뭘까. “대형 사건·사고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화여대 정익중(사회복지학) 교수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역동적이다보니 국민이 국가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바람과 수치심이 동시에 격화되는 등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겪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메르스 확산 때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바람의 정서와 사태를 키운 정부에 대한 수치심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바람·수치심이 분노로 전환되는 패턴이 반복되는 데 대해 연세대 조한혜정(문화인류학) 교수는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그 부분이 불안하다는 얘기”라며 “불안한 부분을 해결해주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노가 사회적 무기력감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사회 전체의 성장이 둔화돼 긍정적인 원동력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재난과 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해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경향성이 커졌다”며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무기력함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바람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를 정책 집행에 적극 반영해 국민의 마음이 수치심·분노 등 부정적 감정으로 변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국대 하지현(정신건강의학) 교수는 “세월호·메르스 같은 국가 차원의 사건이나 사고는 단순히 관련자들을 처벌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논의와 대책 수립이 필요한 문제”라고 제시했다. 정익중 교수는 “정치권이 여론에 담긴 국민의 바람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감성 정치를 펼쳐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마음의 평형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대 노명우(사회학) 교수는 “국민들 사이에 ‘국가가 시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 바람의 감정이 상징하는 긍정적 에너지를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때”라고 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손국희·조혜경·윤정민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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