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병원 기피 … 임신부, 정기검진 미뤘다 아이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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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로 지난 11일 30대 임신부가 119 구급차에 실려 왔다. 임신 20주밖에 안 됐는데 조기 진통이 오는 응급상황이었다. 임신부의 상태는 출산 직전과 비슷했다. 응급조치를 했지만 조산했고 아이를 잃었다. 병원에 따르면 임신부는 병원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감염될 것이 두려워 정기검진을 미뤘다가 변을 당했다. 임신부는 메르스 환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 주민이다. 이 병원 의사는 “ 일주일 전 정기검진 때 왔다면 이상징후를 파악해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한 달째 이어지면서 의료 현장에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꼭 필요한 진료마저 기피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당장 급하지 않은 진료는 미룰 수 있다. 하지만 병원 이용을 미루다 생명이 위험해지는 일도 있다. 지난 16일 오전 7시쯤 부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A씨(71)가 실려 왔다. 심장이 멈춘 상태라 의료진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허사였다. A씨는 고혈압을 앓아왔고 지난 15일 밤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도 곧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의 메르스 집단 감염 사태 때문에 응급실을 피했다. 밤 사이 병세가 악화됐다. 날이 밝자 택시를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다 심정지가 왔다. 병원 측은 “가족들이 병원에 가보자고 했는데 환자가 계속 거부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병원 기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동탄제일병원 박문일 원장은 “임신부, 신장 투석환자, 만성질환자 등 정기검진이 꼭 필요한 환자는 병원 방문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들은 이미 공개돼 있다. 의사들이 그런 병원에 들른 환자는 의료 정보로 확인할 수 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간병인들이 병원을 기피하면서 입원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전체 메르스 감염자 중 7명이 간병인이다. 이에 따라 간병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다리 골절 환자 박모(52)씨는 “18일 나와 같은 병실에 들어온 당뇨 합병증 환자는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간병인을 구하다 결국 못 구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간병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간병인 임영복(68)씨는 “요 며칠 새 간병인들이 다 빠져나간 뒤 안 돌아온다. 가족들이 일 나가는 것을 막는다. 호흡기질환 환자는 특히 간병인을 구하기 어렵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한쪽에선 메르스 때문에 교통사고 ‘나이롱환자’가 줄어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부산에 사는 음식점 종업원 B씨(47)는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와 목에 약간의 이상을 느꼈다. 오래 입원할 필요까지 없었는데도 보름 넘게 입원해 있 다가 지난 15일 갑자기 퇴원했다. 12일 부산 좋은강안병원에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해 1000여 명과 접촉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 이 병원 원장은 “환자가 ‘메르스가 병원 안에서 감염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면서 퇴원했다 ”고 했다.

서울 노원구 한 병원 직원은 “일주일 전부터 환자가 본격적으로 빠져나가더니 지금은 정말 입원해야 할 사람들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병현·임지수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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