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르스 위기 징후 … 국가 비상사태 검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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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오후부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국가적 대형 재난으로 번질지 모를 급박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젯밤 긴급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의심환자였던 서울의 한 의사가 격리 통보에도 불구하고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와 심포지엄 등 대형 행사장에 수차례 드나들며 불특정 다수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 의사는 그 직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한 이 의사에게 메르스를 감염시킨 2차 감염 환자가 1시간30분 동안 시외버스를 탔으며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이송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메르스 확진 환자들의 동선을 감안하면 메르스 통제망이 완전히 뚫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그토록 우려해온 병원 밖 감염(지역사회 감염)이란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도 커졌다.

 이제 정부는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국가적 비상사태를 고민해야 한다. 메르스 대응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나 ‘심각’으로 끌어올리는 비상조치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메르스라는 바이러스보다 정부의 대처에 더 불안을 느낀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초기 상황을 오판해 차관을 대책반장으로 내세우더니 1일에서야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요구했다. 복지부와 교육부가 일선 학교 휴교를 두고 다른 소리를 냈다. 주무 장관이 전체 상황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허둥대고 있고, 경제·사회 두 부총리한테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발생 약 보름 만에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지금은 국민 보건 위기가 아니다. 국민 생명이 달린 국가 안보 위기 상황이다. 대통령 지시로 민관 종합대응TF를 구성했지만 이전 복지부 산하의 민관 합동대책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민간 전문가가 몇 명 더 늘어난 게 차이라면 차이다. 초기 대응 실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국가적 차원에서 메르스 전쟁을 수행할 민·관·군·경 종합대책반이 필요하다. 군 의료진이나 군 시설, 경찰력 등 국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광역단체나 기초단체장도 모두 나서야 한다. 전국의 모든 의료·공무원 인력을 빼서라도 메르스가 발생한 지역에 보내야 한다. 누락된 격리대상자를 찾아내고 집 밖으로 못 나오게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 확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2003년 사스 때 고건 총리가 중심이 돼 전쟁처럼 방역 작전을 수행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09년 신종플루 때도 무리할 정도로 의료기관과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움직이도록 독려해 비교적 큰 희생 없이 마무리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그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국가적 비상사태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복지부 장관으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움직이기 힘들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메르스를 막겠다고 선언하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이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