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률<전남대 교수?농촌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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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상윤 교수는 유교의 공과를 논의함에 있어 그 단점으로 상명 주의를 지적한바 있다. 필자는 유교의 영향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우리사회는 상명주의적 폐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았다. 혹자는 기독교를 믿는 구미인은 죄와 사망에서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영생한다는 영생관을 갖고 있는데 대하여,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은 자신은 비록 죽을지라도 자손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영생하고, 몸은 죽어도 이름이 세상에 남음으로써 영생한다는 인생관을 갖는다고 한다.
자손이 살아 있음으로써 영생한다는 사상은 다남 다복의 가치관을 갖게 하고 과잉인구를 결과하였으며 가족주의적 폐단을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거니와 이름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영생한다는 생각은 상명주의적 병폐를 결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오늘에 있어서도 상명주의적 전통은 강하게 잔존하여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인격의 수양이나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감투를 쓰고,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외형을 갖추는 일에만 정열을 쏟는 경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자기가 소속한 기관이나 단체의 내실을 기하는데는 관심이 적고, 자기의 공적비가 세워지기를 바라며, 그 사업과 함께 자기 이름이 남을 수 있는 일만 하려 한다. 큰일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여 다음 책임자가 착수, 완성할 수 있는 일에는 성의를 갖지 않는다.
진리탐구에 여념이 없어야 할 교수, 사회적 부의 축적에 매진해야할 실업인, 국토방위에 전념해야할, 군인, 병을 고치는 것으로 보람을 느껴야할 의사까지도 유명해질 수 있는 감투를 쓰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경향도 있다.
우리사회는 하루속히 상명주의적 악몽에서 깨어나 자기 이름이 남고, 또 안 남고에 관계없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체계가 형성되어야할 것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고서도 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앙체계가 확립되어 내실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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