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기업 열전<12>|서비스산업의 기수… 일 서무(세이부)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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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2년에서 83년에 걸친 일본의 제3차 호텔 건설 붐을 타고 동경에는 「프린스」 라는 같은 이름의 매머드 호텔 2개가 불과 11개월 사이를 두고 차례로 치솟았다.
하나는 82년4월에 준공된 「신 다까나와 (고륜) 프린스」 호텔이고 다른 하나는 83년3월에 문을 연「아까사까 (적판) 프린스」호텔. 일본의 활력 있는 경영과 서비스 정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대기업그룹 세이부(서무)가 합계 4백50억엔(1엔은 3·3원)을 투입하여 건설한 동경의 새 명물들이다.
지상 16층, 객실 수 l천10실의 신 다까나와 프린스는 2백50억엔, 그리고 지상 40층, 객실수 7백61개의 아까사까 프린스는 2백억 엔이 각각 투입됐다.
대기업이라도 한꺼번에 4백50억 엔을 투자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세이부는 이 2개 호텔 외에도 82년에 휴양지 가루이자와 (경정택) 에 가루이자와프린스 신관 (객실 1백6), 북해도에 니세꼬 동산프린스 (객실 2백)등 2개의 호텔을, 그리고 83년에도 가루이자와 스케이트센터 신관(객실화)과 오꾸하마나 (오빈명) 호 호텔(객실 32) 을 동시에 오픈 했다.

<연간 매상고 3조엔>
금년에도 동경의 중심 록뽕끼(육본목) 에 록뽕기 프린스 (객실2백7), 나가노(장야)현에 노지리꾜 (야고호) 프린스 (객실60), 싱가포르에 크라운프린스 (객실 3백3)등 3개 호텔을 준공할 예정이다. 세이부 그룹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호텔건설만을 예로 들어서 세이부 그룹을 호텔그룹이라고 오해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세이부 철도」 「세이부 백화점」 「세이부 도시개발」 「세이부 건설」 「레스토랑 세이부」 등 회사이름이 보여주듯이 철도· 건설· 부동산· 유통·관광·보험·외식산업 등 사람의 생활과 직결되는 사업에는 손을 안댄 곳이 없는 매머드 기업집단이다.
산하 기업체 수 1백68개에 종업원 10만 명. 연간 매상고는 3조 엔에 달한다. 일본 전국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4천5백만 평을 싯가로 환산하면 총 자산은 20조엔 (66조원)을 밑돌지 않으리란 평가를 받고있다.
운수·관광·레저 등 서비스산업이 중심이 돼 있기 때문에 업종이 다양하고 영업장이 많은 것도 세이부의 특색이다.
자동차 운전교습, 고속도로 요금징수 대행회사가 있는가 하면 도너트를 만들어 파는 회사도 있다. 「레스토랑 세이부」 는 전국에 2백86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 던킨 도너트」 는 79개의 점포가 있다.
48개의 호텔과 1백65개의 슈퍼체인, 24개의 골프장, 18개의 스키장, 그리고 식당· 철도영업소·버스영업소 등을 합하면 세이부의 전국 영업장은 2천 개에 육박한다. 일본국내· 어디를 가나 세이부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자산과 방대한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세이부 맨들은 아무도 자기네 그룹을 재벌이라고 부르기 않으며 일본 국민들도 문어발 식 경영이라거나 재벌이 도너트·식당까지 한다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보인다.
사실 연간 매상 30조엔, 산하기업 1천4백48사를 거느리는 미쓰이 (삼정) 그룹이나 연간 매상 28조엔, 산하기업 1천1백97개사의 미쓰비시 (삼능) 그룹에 비하면 세이부의 존재를 달 앞의 촛불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부 그룹이 일본사회에서 주목을 끌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삼정·삼능 그룹이 패전 후 일단 해체됐다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주인 없는 샐러리맨 회사의 집합체 (그룹의 전 경영자가 고용사장)로 변질되어 활력을 잃고 관료화된 반면 창업 2대째를 맞은 세이부 그룹이 오너경영의 장점을 최대로 발휘, 독창적이고 활력에 넘치는 성장을 이룩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세이부 그룹의 소유자이자 경영자는「스즈미」(제)형제. 형 「스즈미·세이지」 (제청이·57) 는 「세이브 백화점」 「세이우 (서지) 스토어」 등 유통을 중심한 95개 기업을 맡고 있으며 동생 「스즈미·요시아끼」(제의명·50)는 「세이부 철도」「프린스호텔」 등 철도· 관광· 부동산을 중심한 73개 사를 맡고있다.
창업자인 「스즈미· 야스지로」(제강차랑)는 정치가를 겸한 사업가로 부동산투자, 동경의 오물처리 청부 등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으는 한편 중의원의장까지 지낼 정도로 정치적 수완을 보였다.
세이부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4천5백만 평의 부동산도 그가, 사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편 정치와의 밀착 때문에 정상배라는 비판도 받았다.
64년에 사망한 창업차 「야스지로」 는 5형제의 아들 중 3남인「요시아끼」를 택했다. 후계자로는 2남 「세이지」 도 물망에 올랐으나 학생운동 등 자유분방한 생활이 눈에 벗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그룹을 ·물려받은 「요시아끼」 는 7년 후 「세이부 백화점」등 유통그룹을 형인 「세이지」 에게 떼어주어 지금은 정통후계자인 「요시아끼」 의 철도그룹과 「세이지」 가 이끄는 유통그룹으로 사실상 2원 체제를 유지하고있다.
양 그룹은 피차 상대방의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협조한다는 관계만을 갖고 있다.
수년 전 유통그룹이 부동산 투자에 실패, 위기에 몰렸을 때 철도그룹이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 위기를 구해준 일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개성부터가 뚜렷이 다르며 그 같은 개성의 차이가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철도그룹과 유통그룹은 불교와 기독교만큼이나 다른 체질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동생인 철도그룹의 「요시아끼」가 「10년간 수성」 이라는 부친의 유언을 그대로 지켜 최근에야 사업확장을 시작한 반면 시인· 작가로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형「세이지」 는 처음부터 공격형 경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유통그룹이 95개의 산하기업에 방대한 「세이부」「세이우」 유통망을 구축, 기업체 수에서 모 그룹인 철도그룹을 능가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경영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철도그룹이 사람중심의 경영에서 특성을 살리고 있는데 유통그룹이 극장 등 문화사업을 가미한 경영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두 경영자의 개성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경영자에게 공통되는 점이 하나있다. 고객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과 사원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의 요구다.

<신입사원 1년 합숙>
충성심의 댓가로는 직장에 대한 안정감과 생활의 보장이다. 이점에서는 철도그룹이 유통그룹보다 더 강하다는 평이다.
세이부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51년 겨울 폭설이 내려 기차운행이 중지된 일이 있었다. 이때 세이부 철도만은 관계회사 직원들까지 모두 나와 밤새 철길의 눈을 치웠으며 이 때문에 유일하게 세이부 선만이 시발 시부터 정상운행을 할 수 있었다.
몸에 밴 서비스 정신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하나가 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철도그룹은 이 같은 세이부 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대학졸업자의 경우 입사가 결정되면 1년간 합숙을 시킨다. 이 과정을 거쳐야 정사원으로 세이부 맨의 대접을 받는다. 합숙기간 중에는 걸레질에서 변소청소까지 온갖 궂은 일을 해야한다.
일본사회에서 세이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 끊임없이 새 아이디어를 내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는 독창력과 활기가 인기의 비밀이라고 업계를 담당하는 한 기자는 설명했다.
호텔이나 레저시설 등 끊임없는 사업확장이 현지 주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도 긍정적 평가를 주는 요인의 하나다.
세이부는 새로 시설을 개설할 때는 현지주민들의. 반응을 가장 중시한다. 한사람의 반대라도 있으면 진출을 보류한다는 게 경영진의 방침이다.
기업의 서비스 정신과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 이것이 일본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을 세이부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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