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맹외교 이끈 「철의 여제」|「간디여사생가|7억인구 15년간 통치한 놀라운 지도력 종파소요등 무력으로 진압 "독재"비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어머니는 나에게 발은 확고하게 땅에 딛고 서야한다고 가르쳤고 아버지는 수레 고삐를 별에 매달아야 한다고 수없이 가르쳤다.』
「간디」인도수상이 자신의 어릴때를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이같은 부모의 가르침은「간디」수상의 집권15년 정치생활에서 그대로나타나고있다.
극심한 남녀차별사회인인도에서 철권정치에 가까운 강력한지도력과 교묘한 정치술수로 다인종·다종교·다언어·다정당의 복합사회 인도를 하나의 국가아래 15년간이나 통치했던 「간디」여사의 집권은 더욱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원한 잔다르크』『정치의 천재』『인도의 어머니』『승리의 여신』등 갖가지 칭송은「간디매직」으로 불리는 그녀의 정치역량을 상징하고 있다. 인도독립의 아버지 「자와할랄·네루」초대인도수상의 무남독녀로 태어난「간디」여사는 『리틀·인두』(작은 인도인) 라는 별명으로불릴만큼 당찬 소녀였다.
엄격한 힌두교도인「네루」가문은 한때 가족들의 서양식복장을 모두 불태웠을정도로 반영이념에 뚜렷했다.
당시 소녀 「간디」도 손님이 선물한 서양인형을 다락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불태웠다.
「간디」여사는 그후부터 항상 인도전통의상인 사리를입고 대중앞에 섰다.
「간디」여사는 인도에서 기초교육을 받은뒤 스위스를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하고 귀국, 21세때인 1938년 아버지 「네루」를 따라 반영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1964년 「네루」수상 사망에 따라 집권한 「샤스트리」내각에서 공보상을 지낸 「간디」여사는 66년 제3대수상으로 선출됐다.
「간디」여사가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된 것은 71년 인도-파키스탄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였다.
「간디」여사는 초기집권 기간이었던 70년대초 친미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대소관계 개선으로 중립외교를 폈다.
이 중립외교는 비동맹외교로 발전, 이른바 비동맹국가등 제3세계의 정치·외교이념의 주춧돌이 됐다.
그러나 국내정치에서는 시크교도의 펀잡지방, 벵골족의 아샘지방, 타밀족의 남인도지방의 종파및 인종분리소요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철권정치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져갔고 정권유지를 위한 야당탄압및 집권당내 지도력 독점으로 독재자라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장기집권에 싫증을 느낀 인도국민의 반 「간디」무드로 77년 총선에서 참패,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80년 재집권했다.
「간디」여사는 42년 경제학자였던 「폐로즈·간디」씨와결혼, 「라지브」와 「산자이」씨등 두 아들을 두었으나 남편과는 60년 사별, 24년동안 홀로 정치와 함께 살아왔다.
또 둘째아들 「산자이」의 비행기사고로 인한 사망에이어 둘째며느리 「마네카」여사와의사이에 빚어진 고부간의 정치적 불화로 고통을 겪는등 가정적으로 불운했다.

<진창료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