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개천에서 용 안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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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면 필요한 것 세 가지는?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우스갯소리지만 현실이 녹아있다. 대놓고 말하자면 ‘잘나가는’ 집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심지어 대학 입학뿐 아니라 졸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학업 성취도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경우, 잘나가는 집 아이들이 못 사는 집 아이들보다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높았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그렇다.

미국 국가교육통계센터(NCES)는 2002년 미국의 고등학교 2학년생 1만5000명을 최근까지 추적 조사했다. 지금은 20대 후반이 됐을 아이들이다. 이들의 학업 성적은 어떠했으며, 대학 입학과 졸업은 얼마나 했는지, 어떤 직업을 얻었는지 등을 조사했다. 부모의 학력ㆍ수입ㆍ직업 등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가장 낮은 1그룹 아이들은 현재 저임금과 비숙련직에서 일할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부모의 지위가 가장 높은 4그룹 아이들은 고소득, 전문직에서 일할 확률이 높았다.

조사 대상 학생들 대부분 10대 시절엔 대학 졸업을 희망했다. 특히 4그룹 아이들은 87%가 학사 학위를 원했고, 1그룹 아이들도 58%가 스스로 대학 졸업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3년 후 그룹별로 성취 정도는 달랐다. 1그룹 아이들은 단지 14%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을 희망한 아이들 넷 중 한 명만 실제로 목표를 이룬 셈이다.

그러나 부모의 지위가 높은 4그룹 아이들은 60%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을 원한 3명 중 두 명 꼴로 꿈을 이룬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조사 결과 단순히 학업 성취도, 곧 성적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수학 성적과 대학 졸업률을 비교했더니 성적보다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수학 성적 상위 25% 학생들 가운데,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높은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확률은 74%에 달했다. 그런데 성적은 똑같이 좋은데 부모가 하위층에 속한 아이들은 대학 졸업 확률이 41%로 떨어졌다. 33%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또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높은 경우엔 수학 점수가 낮아도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21%나 됐지만, 부모가 하위층인데다 점수까지 낮은 경우엔 대학 졸업 확률이 5%로 4분의 1토막 났다.

신문은 “좋은 성적을 받는 가난한 아이들이 점점 특이한 경우가 돼 가고 있다”며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대학 입학뿐 아니라 졸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교육을 통한 계층 간 사다리 이동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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