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파랑·노랑 얼룩에 숱한 얘기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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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Journey to Red-생각쫓기(왼쪽)와 赤月靑空-赤出於藍.

빨강·파랑·노랑 같은 강렬한 색채들이 점과 선, 얼룩이 되어 흩뿌려져 춤을 춘다. 서양화인 듯한데 좀 더 들여다보면 동양화 같기도 하다. 그림 속에는 강렬하게 해가 빛나고 나무와 산등성이도 겹쳐 보인다.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구도다. 동양화 붓이 지나간 자국도 보인다.

우주의 구성과 원리에 대한 통찰 작품에 담아

이정은 작가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정은(45·여) 작가의 작품이다. 대표작으로 ‘돋아난 우주’ ’우주에 가득 찬 노래’ 등이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영역을 오가며 특별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가의 최근작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생각을 쫓는 눈’이라는 타이틀의 전시로, 3일부터 17일까지 갤러리 ‘가회동60’(서울 종로구)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 17점이 갤러리를 채울 예정이다.

이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일본 도쿄예술대 대학원에서 벽화를 공부했다. ‘우주’의 구성과 원리에 주목하고 작업세계에 대한 고뇌를 거쳐 얻은 통찰을 작품에 옮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이 작가의 작품은 여기저기에 떠 있는 검은 원들이 끝없는 이야기의 마침표처럼 보이며, 시공간을 단축시켜 줄 수 있는 블랙홀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Journey to Red-생각쫓기’와 ‘적월청공-적출어람(赤月靑空-赤出於藍)’에서 보듯 이 작가의 작품은 전형적인 서양화처럼 유화물감들이 두껍게 쌓이지 않는다. 완전히 덮이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교차된다. 그래서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리며,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물감을 겹겹이 뿌리는 작업이 반복되면서 점은 선으로, 선은 면으로 변하고 표면은 표면들로 뒤덮인다.

작가의 생각과 의도 담은 ‘작가노트’도 발간

그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색’이다. 강렬하고 과감한 색들이 폭 5m가 넘는 대작에서부터 작은 작품들까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며 점과 선, 얼룩의 형태로 흩뿌려져 있다. 강렬한 색상들에 대해 그는 “물이나 다른 액체가 섞인 색상이 아닌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천연의 색을 표현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와 함께 그는 작업 중에 써둔 짧은 글들을 모은 소책자 ‘생각을 쫓는 눈: 야상별곡(夜想別曲)’을 발간해 눈길을 끈다. 일종의 작가노트인 셈이다. 이 작가는 “내 작품들은 그림물감이나 페인트를 떨어뜨리고 흩뿌려서 완성하는 추상회화 형식이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며 “수필과 시 형식으로 쉽게 풀어 쓴 작가노트가 관람객들에게 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화(02-3673-0585) 또는 홈페이지(www.gahoedong 60.com)를 통해 알 수 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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