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족은 풍요한 사회의 권태·쓰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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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2년전부터 젊은이들 가운데에 「펑크」라고 불리는 머리스타일이 유행되고 있다. 호의적으로 봐서 눈이 녹은 스키슬로프 같고, 평범하게 볼때 쥐가 뜯어 먹은 모양이다. 때로는 노랑·파랑·보라색 물감을 들이고 거기다 풀을 먹여 마치 수탉의 벼슬, 혹은 로마병 군모장식같기도 한 이 머리모양은 멋있기는 커녕 그로테스크하고 징그럽게 보인다.
펑크머리 스타일은 10여년전 미국은 물론 서구에 퍼졌던 히피들의 장발머리를 연상시킨다.
히피스타일이나 펑크스타일과 기존하는 미학적 기준, 더 일반적으로 가치관과의 갈등관계는 50년대 크게 부각되었던 전위예술과 전통예술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작곡가 「케이지」는 피아노를 부수면서 그 잡음을 「음악」 이라 외치고 종래 갖고있던 음악의 개념에 도전하였고 화가 「뒤샹」은 낡은 변기를 주워다 그것을「샘물」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 예술에 대한 개념에 혁명을 일으켰다.
히피족과 펑크족은 다같이 장발과 쥐가 뜯어먹은 듯한 머리스타일을 통해서 기존의 미학, 나아가서는 가치관에 도전하고 그러한 미학과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기성문화체제에 혁명을 가져오려는 표현으로 볼수있다. 사회철학자 「마구저」의 말대로 일차원적 인간을 만들어 놓고있는 획일적인 오늘의 산업주의 사회에서 그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중요함은 더욱 절실하다.
히피족과 펑크족의 출현은 소극적으로 산업사회의 필연적 표현으로 볼수도 있고 적극적으로는 그런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볼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여년에 걸쳐 나타난 젊은이들의 두가지 유행현상은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존가치에 대한 비판,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히피족과 펑크족의 유사성은 피상적이다. 깊은 차원에서 그들의 의미는 극히 다르다.
히피족은 기성사회의 질서를 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에 대치되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히피사상을 대변했던 「아비·루빈」은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어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되고있지만, 당시 그는 「혁명을 위한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기성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였고, 물질주의와 비인간적 개인주의에 진력이 난 히피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랐고, 곳곳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했었다. 머리를 길게하고 블루진을 끼고 다니던 그들은 사회의 기권자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펑크족은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곳으로부터 수동적인 기권을 하는데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괴상한 머리스타일에 걸레같은 것을 걸치고 시내네거리에 몰려다니며 아이스크림 혹은 맥주깡통을 들고 권태스러운 표정으로 시간을 보낸다.
잘해야 요새 유행되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끄는 것으로 만족해하는것 같다.
무익무해한 노래와 브레이크 댄스가 상품화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있는 여성모양의「마이클 잭슨」이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펑크 스타일이 고급 패션지에 광고되고, 펑크머리 스타일을 꾸미기위해서 젊은 평크족들이 미장원에서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겉보기와는 달리 펑크족이 히피족과 전혀 다른 사회적의미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펑크라는 영어는 「풋나기」 「하찮은것」 「바보」 「깡패」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같이 「비하」 의 뜻을 지니고 있다. 스스로를 비하시켜 바보라고 내세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도피라는 소극적인 제스처에 지 나지 않는다.
펑크족은 기성질서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 아니다.
그 질서에 떼를 쓰고있는 문자그대로 「미숙한 풋나기」에 불과하다. 펑크족은 풍요한 사회에 대한 권태요, 그사회에서 나온 쓰레기다.
모든 새로운것이 다같이 창조적인것은 아니다. 모든 유행이 한결같이 동등한 가치를 갖지 않는다. 빈곤한 사회, 억눌린 사람들이 있고 그런것을 위하여 할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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