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주역에서 정치 주류가 된 486세대

중앙일보

입력

1987년 6월 항쟁은 이른바 ‘486’ 정치인으로 불리는 민주화 세대를 낳았다. 486은 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일컫는 말로 지금은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됐다. 당시 ‘호헌철폐,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거리투쟁의 선봉에 섰던 486인사들은 6·29선언 이후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이라는 훈장을 받게 됐다.

486세대가 본격적으로 제도 정치권에 진출한 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다. 6월 항쟁 당시 20대였던 그들은 사회 진출 이후 30대가 되면서 정치권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친노 핵심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1981년 ‘부림 사건’의 주인공이었고, 이광재 전 강원지사 역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정책국장 출신이다.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의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486 국회의원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이때 국회에 진출했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은 이인영, 우상호, 최재성, 정청래 의원 등 10여 명에 이른다.

정치 권력에 진출한 민주화 세력은 다양한 정치 실험을 시도하며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총선인 2008년 선거에서 줄줄이 낙마하면서 ‘탄돌이’라는 반짝 정치 세력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당내에서도 계파 갈등에 시달리며 구태정치를 답습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야당 내 486 정치인들의 모임인 ‘진보행동’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새로운 정치실험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기존 계파의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 못했다”면서 해체 선언을 하기도 했다.

486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이들이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아닌 ‘물갈이’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훈장은 이제 무능함으로 비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교양학부) 교수는 “486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명분 아래 아직도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앞으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은 지양하고 중도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