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향수를 담다, 3800만원짜리 유광 카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필름 카메라 1대와 기본 렌즈 2개, 합쳐서 3800만원짜리 카메라가 나왔다. 전문가급 기능을 갖춰 이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카메라나 렌즈도 상당수다. 렌즈만 1억원이 넘는 것도 있다. 한데 이 상품은 가격 말고 다른 점에서 눈길을 끈다. ‘광복 70주년 기념’이란 타이틀이다. 카메라 본체와 렌즈에 이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진 한정판 상품이다. 2가지 버전으로 각 70대씩, 총 140대만 판매한다. 카메라 브랜드는 독일의 유명 카메라 회사 ‘라이카’(Leica)다. 독일 카메라 브랜드가 광복을 기념한 이유는 뭘까. 상품을 기획한 김효진 반도카메라 대표(사진)를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죠.”

김효진 대표가 그의 앞에 놓인 ‘광복 70주년 기념 라이카M 카메라’를 보면서 말했다. 본체는 반짝 반짝 윤이 났다. “라이카 사상 유례가 없는 유광 검정 본체”라고 했다. “요즘 카메라에는 유광이 거의 없어요. 무광이 트렌드라 그런가. 한데 이 모델은 예전 카메라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윤기 있는 검정으로 기획했습니다.”

1980년대, 카메라가 집안의 ‘가보’이던 시절의 향수가 묻어났다. 단단하고 묵직해 뵈는 것이 감각적인 최신식 카메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냈다. “광택이 나는 검정 페인트가 나중에 벗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른 모습의 카메라로 변신하죠.” 황동으로 만들어진 카메라 본체에 검정 유광 페인트를 칠했기 때문에 사용하면서 흠집 등이 생기면 도장 아래 있는 황동 표면이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얘기다.

70대 한정판으로 나온 ‘광복 70주년 기념’ 라이카M 카메라. 필름 카메라로 35·50㎜ 렌즈가 포함돼 있다.

한정판 상품에 포함된 렌즈도 검정 유광 페인트로 마감됐다. 각각 35·50㎜ 짜리 렌즈는 본체와 어울려 ‘그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애호가들 사이에선 검정 유광 페인트처럼 예전 분위기를 내는 제품이 더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아마 이 렌즈를 별도로 판매한다면 2000만원 이상이 될 겁니다.” 대개 라이카에서 나온 50㎜ 렌즈 가격은 1200만~1300만원 정도다. 검정 본체 카메라는 작동 방식도 아날로그 그대로다. 필름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 기념’ 카메라는 검정 필름 카메라 70대, 오렌지색 가죽으로 본체를 마감한 디지털 카메라(DRF) 70대로, 오늘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라이카 카메라’도 기획했다. “가격 880만원, 60대 한정판으로 내놨는데 출시 1시간이 못 돼 품절됐습니다. 60주년 에디션의 경우 지금은 가격이 올라서 2000만원이 넘는 시세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과거와 제대로 마주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것이라 그런지 라이카 한정판 중에서도 값이 많이 오른 편입니다.” 김 대표는 “뿌듯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라고 했다.

“독일 라이카 본사에 ‘광복 기념 한정판’을 제안했을 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60주년 상품엔 안중근 의사의 지장을 각인했는데 이 작업에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었고요. 제작사 입장에선 한정판의 최소 수량이 200점은 넘어야 수익이 난다고 해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독일 본사에서 결국 제안을 수용했어요. 그들도 전쟁을 겪었던지라 ‘광복 기념’이 얼마나 뜻 깊은 것인지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10년이 지나 나온 70주년 기념작은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조합일 것”이라고 했다. 35㎜/f1.4는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전천후 렌즈이고, 50㎜/f0.95는 라이카의 가장 밝은 렌즈다. 50㎜ 렌즈의 화각은 전설적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즐겨 작업했던 그것이다.

라이카·핫셀블라드·슈나이더·알카스위스 등 10여 개 명품 카메라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해 온 김 대표는 1999년 반도카메라를 세웠다. 본격적인 카메라 유통 사업 이전부터 취미로 모아온 ‘빈티지 카메라’만 20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모은 희귀 빈티지 카메라 2000 여 점을 서울 충무로 2가 반도빌딩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박물관급이지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매장이라 입장료도 없다. 2층엔 갤러리를 운영해 젊고 재능 있는 사진 작가의 전시를 돕고 있다.

“카메라는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 왔어요. 사진 기자의 카메라가 시대를 기록한 것처럼, 누군가의 손에서 역사와 함께 호흡해 온 것이죠. 결국 요즘 사람들이 카메라를 원하는 건 이런 감성적인 면을 높이 사기 때문일 겁니다.”

글=강승민 기자 quoiqu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