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이 땅에 사는 외국인도 한국인의 심장을 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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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지난 4월 세월호 추모 기간 동안 나는 한국사회에서 다시 한번 ‘외부인’으로 분리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 이런 대참사 앞에 주변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애도를 표하는 나에 대해 일부에서 의외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1주기 날에 나는 개인 인스타그램(SNS의 일종)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임을 빚지고 있으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글귀를 올렸다.

 그런데 100개가 넘는 댓글 중 ‘한국인으로서 정말 고마워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외국인인데도 슬퍼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의 메시지가 있었다. 한국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댓글이었다. 이러한 일에 슬픔을 느끼고 애도하는 것은 외국인이 했다고 치하받을 일이 아니며, 국적을 떠나 모두가 공통으로 갖는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만 슬픈 일은 아닌데…” 하며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이 지난 수천 년간 단일민족 국가로서 정체성을 공유해왔으며 긴밀한 유대의 문화가 있다는 것은 안다. 이는 한국 사회만의 고유한 특성이자 저력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책임의식을 느끼면서 함께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종종 한국 밖에서 와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잘못 이해하거나 그들의 의도를 왜곡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한국이 좋아서, 그 문화가 존경스럽고 한국인의 열정과 투지에 매료돼 이곳에 살기로 했던 것이다. ‘당신’의 슬픔을 슬퍼해 주고 ‘당신’이 기뻐해서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 한국 사회의 슬픈 일에 슬퍼하고, 나라에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함께 성취감을 느끼며 기뻐한다.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땅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슬픔과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이는 인간적으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는 않지만 나는 한국인의 심장을 갖고 있으며 마음은 한국인과 똑같다.

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제임스 후퍼(28)=2006년 19세로 영국인 최연소 에베레스트를 등정. 2007년 무동력 방식으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4만1842㎞ 지구 종단. 200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올해의 탐험가’. 경희대 지리학과 졸업 뒤 호주 울런 공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공부 중. JTBC ‘비정상회담’ 1~4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네팔편’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