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논문으로 연구비 받으면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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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후 논문을 근거로 연구비 신청 절차를 거쳐 소속 대학에서 1억원, 과학기술부에서 2억원을 받았다. 또 강연에서 "암 정복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으며, 이에 감동받은 암환자 한 명이 자발적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회사원 B씨는 1억원을 들여 A씨가 관여한다는 소문이 있던 제약사 주식을 샀다. 그런데 최근 논문이 의도적으로 만든 가짜로 밝혀졌다. A씨의 법적 책임은?

A : 형법상 사람을 '속여' 재물을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사기죄로 처벌받는다. 본인이 직접 받지 않고 제3자에게 받게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A씨의 경우 대학과 정부를 적극적으로 속여 돈(연구비)을 받아냈으므로 사기죄가 성립된다. 또 암환자를 상대로 한 사기죄를 적용받을 수도 있다. 사기죄에서 '속인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상태, 즉 '착오(錯誤)' 상황을 소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 경우 논문 내용이 가짜인 줄 알았다면 암환자가 돈을 주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A씨는 논문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만큼 '신의(信義)'를 저버린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민법 제2조 '신의 성실'). A씨가 연구기자재를 구입해 소속 대학에 기증했거나, 제3의 연구기관에 돈을 전달했더라도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의학잡지에 논문을 실은 것에 대해선 형사상 업무방해죄, 민사상 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僞計.거짓으로 꾸밈).위력(威力)으로 업무를 방해한 경우가 해당된다. 대학생이 논문을 허위로 써 제출한 경우 사립대에 다니고 있었다면 업무방해죄, 국립대학이었다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다. A씨와 함께 일한 연구원이 논문 작성에 참여했다면 관여 정도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된다. 만약 A씨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해 소극적으로 일부분만 도와줬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A씨와 적극 공모했다면 법적 책임을 지는 게 불가피하다.

소문을 듣고 주식을 산 투자자 B씨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투자하도록 권유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재식 기자

◆ 자료협조=법무부 보호과 법교육팀(www.lawedu.go.kr), 법률자문=오영상.최용석 변호사, e-메일 법률상담=대한법률구조공단 사이버상담팀

◆ 형법 제347조(사기)=①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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