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목사 부부 '따로 또 같이 … 하나된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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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각자 살아온 삶을 최근에 한권의 책으로 묶은 홍근수(65.향린교회 담임) 목사와 김영(62) 목사 부부-.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그리고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비판자로서 참으로 행복한 삶을 꾸리는 것 같았다.

29일 오후 7시 향린교회를 찾았을 때 이들은 서울 노회가 마련한 홍 목사의 은퇴식을 막 끝내고 삶의 새 터전인 20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해 준 '홍사모'(홍근수 목사를 사랑하는 향린교회 교인들의 모임)회원 99명에게 일일이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미국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아내가 한국에서 목사로보다는 목사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현실이 안타까웠고, 아내에게 늘 빚을 지고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목사의 목회는 목사 본인만의 활동이 아니라는 게 평소 지론입니다."

정년을 5년 앞당겨 다음 달 8일 은퇴하는 홍목사는 이렇게 감회를 이어갔다. "아내의 역할이 컸지요. 그래서 아내의 이야기까지 들어야만 하나의 자서전으로서 완결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인인 김 목사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40년 전 결혼 초반을 돌이켜보니 아무도 저를 억누르지 않았는 데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었던 문화에 스스로 억눌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1975년에 대구 YWCA 총무로 활동하면서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했고, 나와 남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삶의 온갖 것을 죄다 털어놓으니 해방감과 홀가분함을 느낍니다. 스토리 텔링으로 10여년간 치유목회를 하면서도 제 자신이 치유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출판사 한울에서 발간된 회고록에는 홍목사의 '나의 걸음''과 김영 목사가 시와 산문으로 풀어쓴 삶의 이야기 '좋은 것을 깨는 여자'가 앞뒤로 담겨 있다. '나의 걸음'은 '반미목사''통일목사'로 불리는 홍목사의 유년 및 학창시절, 미국 유학 생활, 보스턴 한인교회와 향린교회의 담임목사 시절, 투옥을 비롯한 재야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은 것을 깨는 여자'에는 김 목사가 이화여대 재학 시절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것에서부터 미국에서의 목회 경험, 관습의 질곡에 대한 비판, 민중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애정 등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목회를 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우리 개신교가 개선해야 할 부분을 주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성경 못지 않게 우리의 이야기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교회의 간증은 거의 예외없이 해피 엔딩입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보통 사람들이 아프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달래줄 수 있어야 합니다."(김 목사)

"교인 정원제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교회의 대형화를 막고, 선교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가 권위적이면서 밖을 향해 민주화를 요구하면 설득력이 떨어지지요."(홍 목사)

그런데 홍 목사가 원로 목사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채 조기 은퇴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 물음에 그는 향린교회가 원로 목사에게 배풀어야 하는 경제적 지원 부담을 줄여 교회가 울타리 밖으로 눈을 돌릴 여유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목사에게는 특별히 다른 여성 목사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남자 목사를 흉내 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다움으로, 그리고 모성으로 여성적인 목회를 하다보면 하느님(향린교회에서는 '하나님'대신에 '하느님'이란 표현을 쓴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살아납니다."

홍 목사는 16년 5개월동안 향린교회를 이끌어왔다. 후임은 미국 워싱턴에서 활동한 조헌정 목사가 맡는다. 제 3대 담임목사를 맞아들인 향린교회는 지난 18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홍 목사는 "이제 교회 목회는 접고 시민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목사는 향린교회 밖에서 실험 교회를 꾸려갈 계획이다. 춤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름하여 '춤추는 교회'운동을 계속하면서 '이야기 공동체'적 성격의 치유활동을 펼치겠다는 것.

부부의 관계가 어떠냐는 질문에 홍 목사가 "친구처럼 지낸다"고 대답하자 김목사는 "억압 많이 받았지 뭐…"라며 웃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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