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차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추석예매표를 파는 현장을 보고 불현듯 그곳에 가서 줄에 서고 싶다.
갈래야 갈수 없는곳, 잃어버린 고향이 저쪽에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야 가려야 어릴때 부모님 한테서 늘 들어온 얘기지만 시집와서도 남편의 고향이 이북이고 보니 열흘전에 표를 사고 말고 할 설렘이 없다.
몇년전만해도 역마다 많은 귀성객이 밀고 밀리면서 고향을 찾아가는것을 보면 왜 한가할때 안가고 추석명절때 가야하나 하고 이해할 수없었다.
그런데 꼬마들이 커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절실한 것은 고향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마음의 고향이 아닌 실물의 고향말이다.
아무리 멀어도 갈수만 있다면 나도 저 인파속에 기다리며 잠을 설치고 표를 사고 짐을 챙기고싶다.
1년내내 도시생활에서 바쁘게 살다가 모든 것을 훌훌털어버리고 아이들 앞장세워 가고 싶은 곳은 산골벽촌이면 어떻고 섬구석 끄트머리면 어떠한가.
그야말로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고향산천에 부모형제들, 소꿉친구며 내 어릴적 이웃들 두엄냄새 맡으며 동네어귀로 들어서면 멍멍개도 반기는 훈훈한 인심들이 올망졸망 눈앞을 스친다.
고향이 있어도 갈수 없는 우리 2세들의 갈망은 둘째치고 부모님들의 허전함과 쓸쓸함은 무엇으로 메워야 하는지 아이들이 가끔씩 물어온다.
우리도 원두막이 있는 시골집으로가자고 할때면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힌다.
저 푸르고 넓은들, 높은산이 다 네고향이라고하면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마지막 한장 남은 차표라도 좋고 막차를 타고가도 닿을수만 있다면 가슴 콩콩 울리면서 뛰어가고싶다.
그래서 그 무엇이라도 자랑하고싶다.<경기도수원시 인계아파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