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공무원법 개정안 거부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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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17일 전인 8일이다. 사학법 개정안 처리 하루 전이다. 법안의 발의 시점도 9월이다. 3개월 동안 열린우리당은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당정 협의 등 정부 측과 조율하는 과정도 밟았다고 주장한다. 그런 만큼 이번 논란은 의외다. 법안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정.청 협의에서 사전에 검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거부권을 건의하는 청와대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개정안이 의원입법 형식을 빌렸지만 경찰 측의 로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뭐를 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부 발의가 아닌 의원 발의 법안은 꼼꼼히 체크하기가 힘들고 더구나 이번 법안은 워낙 전격적으로 통과돼 사전 점검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양극화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경찰 승진에 퍼붓는다면 누가 이해를 하겠느냐"라고 물었다. 법안 자체도 무리한 것인 데다 처리 과정도 청와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문제가 더욱 관심인 이유는 파워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찰 측은 '허준영 경찰청장 죽이기'라고 주장한다. 한 경찰 간부는 25일 "허 청장이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없이 국회에 나가 강정구 교수에 대해 구속 의견을 밝힌 것부터 수사권 조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여권 내에서 허 청장에 대한 불만과 견제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와중에 시위 도중 부상을 당한 농민 두 명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허 청장 사퇴론이 불거졌다"고 말했다. 그는 허 청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했고, 그 여파가 거부권 논란으로까지 번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일각에서 시위 농민의 사망 이후 허 청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는 했다. 지난주 청와대의 한 실무 관계자는 "허 청장 측에 여러 경로를 통해 자진 사퇴를 권유하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아는데 허 청장이 요지부동이어서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허 청장의 사퇴를 원하는 것은 농민 사망사고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추진 과정 등에서 보인 일련의 독불장군식 행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기류가 경찰 측에 전해지면서 허 청장을 중심으로 한 반격이 제기됐고, 마침내 청와대 참모들의 거부권 행사 건의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허 청장의 진퇴와 거부권 검토는 전혀 별개라며 이 같은 주장들을 부인했다.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청 고위 간부는 "경찰 승진연한 단축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줄 수 있는 선물인데 이를 잃게 되자 청와대 측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청와대의 '권한'부분을 경찰이 침해한 것으로 오해해 괘씸죄를 적용받고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정치권에선 "여야 합의에 의한 개정안 통과로 경찰의 지방선거 불법행위 감시가 느슨해질 가능성을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차원에서 문제를 보기도 한다.

최훈.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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