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락한 한국과학의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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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사위는 남아있는 줄기세포에 대한 진위를 조사 중이며, 황 교수가 주도한 2004년 사이언스 논문과 복제개 스너피에 대한 조사도 벌이겠다고 했다. 황 교수가 해온 그간의 연구 전체가 의혹의 도마에 오른 셈이다.

서울대 조사위는 "지금까지 드러난 논문의 데이터 조작만으로도 황 교수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연구에 대한 검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현재까지 확인된 논문 조작만으로도 엄중한 책임을 묻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이날 조사위의 발표 직후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사태는 그가 교수직을 내놓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황 교수는 그의 연구업적에 열광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온 국민의 가슴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의 논문 조작으로 한국 과학계에 씌워진 허위와 불신의 이미지는 쉽게 씻기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황 교수가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가 있기까지 끝내 진실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진실만이 해법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불법 난자 제공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황 교수가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그는 고비마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한국 과학계의 영웅 황우석 교수를 본받아 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수많은 어린 새싹들이 느낄 낭패감과 좌절감을 생각하면 논문의 조작에 더해 끝까지 진실을 감춘 부도덕성이 더 큰 과오다.

황 교수에게 천문학적 자금 지원과 최고과학자 대우를 해준다며 법석을 떤 정부는 뒤늦게 최고과학자 지정을 취소하고 연구비를 회수하겠다고 나섰다. 국책사업에 버금가는 돈을 퍼붓고도 그동안 연구결과의 검증에 이토록 소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과 장관까지 나서서 황 교수 연구 업적의 후광을 누리기에 바빴지 정작 그의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거나 관리하는 데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학계는 이번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파문으로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일찍 학계가 학문적인 검증에 나서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논문 조작의 실상이 외국의 학계가 아니라 국내의 젊은 과학도들에 의해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내 학계의 자정(自淨)능력을 입증함으로써 한국 과학계의 위상이 통째로 무너질 위기를 모면했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이번 사건으로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엄격한 윤리규범을 확립하고, 제도적으로 부정.부실 연구를 걸러낼 수 있는 학문적 정화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이번 일로 생명과학 분야의 다른 연구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국내에는 황우석 교수 외에도 국제적으로 탁월한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는 학자들이 많고, 이들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이제 서울대 조사위는 황 교수의 나머지 연구 결과에 대한 조사를 엄정하게 마쳐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 조사 결과에 따라 서울대는 황 교수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황 교수가 제기한 '줄기세포 바꿔치기' 여부와 함께 논문 조작 행위에 따른 책임과 자금 유용 여부도 철저히 수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국 과학계가 살고, 국민의 가슴에 쌓인 앙금도 다소나마 덜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