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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육 이대로 둘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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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렇게 볼 때 경제 교육과 경제의식의 함양은 개인은 물론 우리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시장원리에 대한 인식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기업을 영리가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생각한다든지, 시장 개방을 강대국의 일방적 이익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는 정서가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무슨 일이든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규제 만능주의나 분배 개선, 환경 보호와 같은 중요한 의제를 기회비용을 무시한 감정적 여론으로 접근하는 것도 경제인식의 부족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오래 경험한 동유럽이나 중국은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 없이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의 경제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중.고 수준에서부터 적극적인 경제 교육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경제 교육 시스템은 총체적 부실에 허덕이고 있다. 우선 경제교육 시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지리.세계사 등 같은 사회계열 과목과 비교해도 4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교과서는 각종 규제와 시장 담합, 허술한 검정 과정 등으로 인해 질이 떨어지며, 교사들 역시 제대로 경제학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이 적다. 수능시험에서도 경제는 어려운 과목, 점수 받기 힘든 과목으로 낙인 찍혀 선택 비율이 13% 안팎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교육 현장이 이처럼 황무지에 가까우니 일부 정치적 교사들에 의해 좌파적 신념을 학생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는 장이 되고 있는 것도 놀랄 일만은 아니다.

경제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교과과정의 개발단계부터 교육수요자와 학계가 적극 참여하고,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유인을 높이며, 검정과정을 개선하여 엄정한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교사의 재교육을 활성화하고, 임용 시 경제과목 이수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흥미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교육내용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초.중등학교 수준에서부터 생활과 밀접한 경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여러 단체가 개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경제교육 노력을 종합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협력체계 구성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이미 1949년부터 학계와 교사가 중심이 된 국가경제교육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적 수준에서 경제 교육 강화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와 추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학교 경제 교육 시간을 늘리는 일은 서슬 퍼렇던 5공 정부에서조차 이해 당사자들의 벽에 막혀 좌절되었다. 과목별 학교 수업시간 조절은 행정수도 이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지난 세월 경제 교육을 방치해 온 결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