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향기] 2000년 전 성수 자동판매기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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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하면 대부분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와트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약 2000년 전 그리스에도 증기기관이 있었다. 헤론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가 발명했다. 솥 같은 것에 물을 넣고 불을 때서 나오는 증기를 이용해 축을 돌리는 식이다.<그림>

당시 그리스의 신전에는 저절로 열리는 돌문이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데, 바로 헤론의 증기기관을 이용한 것이었다. 사제가 신전에 불을 붙이면 숨겨진 솥이 데워지면서 증기를 뿜어 돌문이 열리도록 꾸며 놓았던 것이다.

헤론이 '성수(聖水) 자동판매기'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동전을 넣으면 성수 한 컵이 나왔다니, 오늘날의 커피 자판기와 마찬가지다. 헤론은 또 수레에 붙여 수레가 달린 거리를 재는, 지금으로 치면 택시 미터기 비슷한 것도 발명했다. 기관총에 해당하는 화살 연속 발사 장치도 개발했다. 이처럼 수많은 발명품을 쏟아낸 헤론을 당시 사람들은 '기계 인간'이라는 뜻에서 '미케니코스'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 중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안티키테라의 기계'라는 것도 있다. 그리스 안티키테라섬 부근 바다 밑에 난파된, 약 2000년 전의 배에서 1900년께 찾아냈다. 복잡하고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잔뜩 달린 기계였는데, 발굴 당시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랐다. 그러다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이것이 해와 달 등 천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계산해 낼 수 있는, 일종의 천문 컴퓨터임이 밝혀졌다. 증기기관.자동판매기에 천문 컴퓨터까지. 2000년 전 그리스의 과학기술 수준이 근대에 비해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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