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와 재산의 「사회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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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내혁씨에 대한 투서사건의 시말을 보는 국민의 심정은 그렇게 명쾌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새로운 혼돈 속에서 어리둥절한 느낌조차 든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은 문제의 핵심보다는 겉껍질만을 보며 더러 흥분도 하고, 더러 분노도한 감정 낭비가 없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의 입장에서 이사건의「정치적 수습」에 뒤따르는 여운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 문제의 발단이 된 「투서」에 대한 평가다. 우선 그 내용이 무고냐, 아니냐 하는 시비는 법리의 토론으로 밀어 놓고라도, 그 동기가 과연 공명정대하며 얼마나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투서냐의 문제는 결코 관심 밖의 일 일수 없다.
그 점은 투서 당사자인 문형태씨의 사과문에도 명기되어 있다. 『…정내혁과 다소의 개인적 감정이 있었던 데다가 소생이…정치 재개를 목적으로 다소의 야심이 발로되어…』운운이 바로 그 대목이다.
한마디로 그 투서의 동기는 사회고발이나 정의 구현보다는 개인적 구원과 정치적 야욕이었다.
더구나 투서가 작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여간 조직적이고 치밀하지 않다. 그만큼 개인의 원색적인 감정을 담은 투서라는 얘기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공분 인양 보였지만 투서 자체의 동기가 음험했다는 평판은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투서를 놓고 한 정당의 대표위원이 선뜻 자리를 내놓고, 세평이 들끊기엔 문제의 본말이 뒤바뀐 인상도 든다.
두 번째는 정내혁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성명이다. 우리는 그것이 외부의 압력에 못이긴 타의의 결단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저간의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정씨 개인의 결심일 것 같기 도하다.
그러나 정씨는 투서사건이 물의를 빚기 시작할 무렵, 자신의 재산은 이른바 『권력형 축재는 결코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했었다. 심지어는 부인의 「계」 놀이와 「부동산」재미에 의한 축재과정까지 해명했었다.
이제 그 재산이 많다는 세평만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와서야 사회에 자신의 재산을 「환원」할 명분은 없다.
시각을 달리해서 「사회환원」이라는 문제자체도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사회는 「사유재산의 사회환원」을 문제의 해결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더구나 지금은 「개혁」우선의 초법적 시기도 아니다.
사소유권의 보호는 「계약자유의 원칙」과 더불어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이다. 그 때문에 헌법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법은 국민의 사유재산을 끝까지 보호해 주고 있다.
우리가 기꺼이 세금을 내고, 국토를 지키고, 또 성실 근면하게 일하는 것도 그런 원칙과 미덕을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사유재산의 사회환원을 단순히 감상적인 견지에서 받아 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유재산의 진정한 사회환원은 그것의 법적 보호 속에 생리적인 기능을 통해 많은 사람이 그 혜택에 참여하는 일이다. 재산가에게 사회적 책무가 있다면 바로 그 생산적 기능을 보다 공익에 가깝게 하라는데 있다.
또 국가는 그것을 튼튼한 법으로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투서사건의 수습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솔직히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다루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고언이다.
한동안 사법 환원에서 다루어지는가 했더니 어느 결에 정치 무대에서 「수습」이 발표되었다. 그것도 국회의원의 사퇴까지는 정치흥정의 영역일수도 있다.
그러나 축재는 그 시비곡절을 불문하고 「사회에 환원」하면 그만이라는 초법적, 정치적 처리는 이치에 안 맞는다. 『어리둥절하다』는 모두의 표현은 바로 그 말이다.
국민도, 우리사회도 모든 문제 해결방식에 있어서 이젠 좀 성숙했으면 하는 기대가 앞선다.
이번 투서사건은 그런 점에서도 바깥의 「수습」과 함께 그 내면의 여운까지도 수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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