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의 긴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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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정 각부처가 요구한 내년예산이 올해보다 28%나 늘어난 1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예산요구액은 예년의 요구관례에 비추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예산이 동결예산이고 내년예산도 10%선 이내에서 증가율을 억제하겠다는 것이 이미 여러 차례 공표된 정부의 예산지침이고 보면 각 부처의 요구는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정부활동의 긴축이 많은 무리와 고통을 수반할 것이라는 점, 경제사회의 발전에 따른 여러 측면의 정부서비스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결에 따른 반사적 재정수요의 증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의 경제운영에서 중점적으로 추구해온 기본 과제가 다름 아닌 안정과 자립도의 향상이었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절제와 긴축에서 출발되어야할 성질의 것이다.
올해의 동결예산 편성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면서도 정부와 민간의 합의를 쉽게 얻어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정은 올해와 내년에도 크게 다를바 없다. 3년여의 안정화시책은 아직도 안팎의 여러 부문에 도사린 불안정요소로 인해 쉽게 상처받을 만큼 안정의 토대가 굳어지지 않았다.
경제안정의 큰 바탕이 되었던 해외 요인들이 점차 변모하고 있는데다 대내적으로는 경기의 회복 추세와 함께 일부 과열부문이 나타나는등 지난해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변화는 최근의 국제수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3년 동안의 착실한 국제수지 개선이 최근 들어서의 급격한 수입확대와 에너지소비 증대로 적자폭이 확산되고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가 5차 계획의 후반 3년 계획을 대폭적으로 수정한 것도 경제안정의 정착과 외상해결이 2, 3년간의 단기노력으로는 결코 얻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국내외 사정으로 미루어 내년 예산의 기본 방향은 스스로 분명해진다. 총체적으로는 여전히 긴축과 절제의 바탕 위에서 총재정수지의 균형화가 필요하고 각종 기금이나 특계의 누적채무도 일반회계의 흑자로 지원함으로써 정부채무는 축소되어야한다. 그래야만 누적외채의 중압에서 벗어나는 기틀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내년 증가율을 10%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것은 올해 동결예산의 후유증을 어느 정도 고려한 것이라 해도 납세자들로서는 결코 긴축예산이라 보기 어렵다. 때문에 불요불급한 신규사업이나 증원은 최대한 억제돼야되며 예산의 효율은 올해에 이어 계속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기본 수요의 해결과 새롭게 대두되는 공해, 기술개발등 주요 전략부문에 정부노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정부활동에 관한 일반적 타성과 관행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방위비나 지방교부금등 각종 경직적 정부예산 배정까지도 총괄적 균형의 테두리 안에서 재조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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