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연주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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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얼마전 함북 어머니합창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연주여행을 떠나시게 된 친정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아카시아꽃잎이 떨어져 눈길같은 꽃길을 지나 공항으로 달려갔다.
2층 지정된 장소엔 엷은색의 울긋불긋 한 옷을 곱게 차려입은 회원들이 모여 앉아 즐거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몇몇 구면의 어머니들은 다가서는 우리 세자매를 반가이 맞아 주셨다.
못가는 고향을 그리며 이젠 혈연만큼이나 가까워진 단원들은 손자 손녀를 거느린 할머니들이지만 노래와 더불어 살아 오셨음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신다.
한편에선 한 단원의 큰아드님으로 이번 여행의 수족을 맡았던 여행사대표가 부하직원과 연신 우스갯소릴 해가며 인원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번 연주기간 중엔 친정어머니의 회갑날이 들어있다.
회갑상보다는 조그맣게 발표회나 가졌으면 하시더니 기꺼이 연주여행을 택하셨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우리 5형제 뒷바라지로 평탄한 날 없었던 긴 세월 「지내보니 잠깐이더구나』 하시며 딸랑이는 동전 몇닢만으로도 즐거이 외출하실 수 있는 어머니를 가까이서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질에 얽매여 전전긍긍하는 나에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행히도 늘 유쾌한 성품이셔서 아무리 사는 것이 고달파도 줄거움을 찾아 낼 수 있는 성품이신지라 조금은 덜 외롭고 쓸쓸하지 않으셨을까.
미흡한 딸은 이렇게나마 스스로 위안을 얻고 있다면 괘씸하게 여기실는지.
탑승절차를 끝내고 출구로 향하는 어머니의 주름진 두손을 꼭 맞잡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우리 자매들은 그 멋진 목소리 마음껏 뽐내시고 부디 건강하게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빌며 공항을 나섰다.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643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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