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의 합의 파기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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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 장성급 회담의 공전이 새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구체적 날짜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회담의 개최는 6월 15차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됐다. 장소는 백두산으로 하고, 개최 일시만 양측 군사 당국이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측은 6개월이 넘도록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장성급 회담 재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동의한 사안이었다. 그는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회동에서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해선 이 회담의 재개가 필요하다'는 정 장관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 테이블에만 앉으면 태도가 변한다.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언급한 약속마저 이행되지 않으니 과연 이런 대화를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북한의 합의 불이행은 장성급 회담뿐만이 아니다. 역시 김 위원장이 정 장관에게 약속한 남북 공동어로를 위한 수산회담 개최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10월로 예정됐던 경의선 시험 운행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북한 행태가 지속되는 한 대화는 무의미하다.

현 정부는 북한의 웬만한 요구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들어줬다. 달라는 대로 쌀.비료를 주었고, 장기수 북송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10월 16차 장관급 회담 때는 우리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노린 '체면주의 타파' 요구도 공동보도문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런 지원과 호혜 조치를 납북자나 국군포로 송환에는 연계시키지 않았다. 북한의 합의사항 불이행에도 따끔한 경고나 대응조치가 없었다. 그 결과가 북한으로 하여금 '합의를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판단을 갖게 만든 것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특히 북측이 남측 요구를 거절할 때 항상 내세우는 '군부의 반대'라는 구실에도 이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최고지도자'의 말까지 반대하는 군부인지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대북 지원도 지렛대로 사용하는 등 강약을 조절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번 주고 당하기만 해서야 진정한 남북 화해를 추구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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