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일본의 '귀여니'…허걱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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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상륭이야 '평단의 직무유기를 야기한다'(평론가도 말하기 버거우니까)고 불릴 만큼 난해한 작가이니 되레 당연하다. 문제는 귀여니도 박상륭만큼 이해가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5월 발표한 장편 '아웃싸이더'는 참으로 난감했다. 이모티콘 수시로 사용하는 채팅 용어로 사춘기 연애 감성을 털어놓은 글을 무수한 독자가 열광하는 이유는 더 모를 일이었다. 문학 자체에 대한 혼란마저 일었다.

알 수 없는 일은 또 일어났다. 일본의 15세 소녀 가와사키 마나미가 쓴 소설 '사랑합니다'(작품)를 만난 것이다. 일본 유력의 쇼각칸(小學館)상 수상작이란 해설이 붙었다. 일본의 무슨 문학상 수상작이란 광고가 범람하는 때라 도쿄 특파원에게 e-메일로 물었다.

"일본엔 1년 내내 시상식이 벌어진다고 할 만큼 문학상이 흔한데, 쇼각칸은 큰 출판사이니 괜찮다고 봐야지."

소설을 읽고난 소감은, 그러니까,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을 엿본 기분이다. 형형색색 색연필로 깨알같이 적고, 예쁘고 고운 삽화 곳곳에 그려넣은 꽃무늬 노트, 평소엔 자물쇠로 굳게 잠가 서랍 깊숙이 감춰두는 노트 말이다. 내용? 당신이라면 거기에 무엇을 숨기겠는가? 세상 무너지는 사랑의 아픔 말고 있는가?

일본문학이 강세인 요즘이다. 정확히 일본 대중문학이 인기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알 것이다. 아쿠타가와.가와바다 야스나리상 등 전통의 문학상보다 나오키.야마모토 슈고로상 등 대중문학 전문 문학상 수상작이 주로 수입된다. 올해 교보문고 소설 베스트셀러 6위인 '공중그네'도 지난해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특징은 또 있다. 일본 대중문학은 하나같이 들고다니기 편한 4x6 양장본 판형이다. 이 크기는 출판계에서 '바나나 스타일'로 통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 먼저 시작한 판형이란 뜻이다. '사랑합니다'도 딱 이만하다.

순정만화 같다는 평은 국내 문단에서 욕설에 가까웠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사히신문은 2월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작품을 비난하는 건 소녀만화의 깊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젊은(혹은 어린) 문학으로 고개를 돌리자는 주장이다.

요즘 일본에선 10대가 곧잘 문학상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두 경우를 상상한다. 국내 출판계를 일본 10대 작가가 휩쓰는 경우와 국내 문단에도 10대 돌풍이 부는 경우다. 아사히신문처럼 외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겠다. 아직은 너무 어렵다. 문학터치도 늙었나 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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