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컬럼] 러시아와 한국의 닮은꼴 고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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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15면

최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몇 년 전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전북 고창읍 관련 기사였다. 이 지역에서 오랜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접하자 2007년 고창읍을 여행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 전남 목포를 가던 길에 잠시 고창읍에 들렀다.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시 고창읍 풍경과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우리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신선한 야채와 새우 등 정갈한 반찬과 함께 내놓은 쌀밥은 정말 한국에서 맛본 식사 중 최고였던 것 같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노인들이었다. 당시에는 ‘젊은이들은 모두 어디 가고 왜 노인들이 힘들게 식사 대접을 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의문이 풀렸지만, 한국의 빠른 산업화로 인해 농촌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고창읍과 같은 마을이 적지 않다. 특히 농촌의 경우 50, 60대도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농촌이 점점 공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촌이 산업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러시아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도시들이 많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모노시티(monocity)’다. 러시아의 모노시티는 한국의 농촌보다 더 비참한 상황이다. 잊혀진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 시절 모노시티는 계획경제의 성공 사례였다. 모노시티는 한 도시에 한 가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국가정책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지역에 세워진 산업시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을 내면서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는 구조다.

1990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모노시티는 몰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감안할 때 한 도시의 자급자족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는 더 이상 시장을 확장하기 어려웠다. 또 이렇게 조성된 특성화된 산업은 시장의 트렌드를 제때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도 실패했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을 축적한 후발 기업들에 밀려 공장 문을 닫는 상황이 속출했다. 결국 모노시티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나이 많은 노인만 남았다. 단기간에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도시를 건설할 수는 있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쇠락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모노시티가 러시아 경제에 주는 시사점도 크다. 집중적인 투자로 특정 산업 발전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고유가 시대에 러시아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끌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경험 부족과 러시아의 오랜 사회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최근 국제유가의 하락과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산업 다각화 등 체질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에너지 산업과 방위 산업에 치중돼 있는 산업구조는 러시아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모노시티에 젊은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모노시티와 한국의 농촌이 재기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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