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안절부절 못한 감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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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26일 '2002년 말 예산운용 실태 감사' 보고서를 배포했다. "자료가 나오면 잘 써달라"는 사전 당부까지 했다.

보고서에는 정부 부처들의 부적절한 예산배정을 비롯해 전용.낭비 사례가 망라됐다. 문제가 된 청와대 권오규(權五奎) 정책수석 관련 부분은 '업무추진비 등의 세출예산 집행 부적정'이란 항목에 포함됐다.

당초 자료엔 權수석의 이름이 없었다. '조달청 기관장이…'라고만 표현됐다. 기자들과 한참 승강이를 한 후에야 감사원은 "당시 기관장은 김성호.권오규씨"라고 답변했다.

직후 감사원은 언론을 상대로 해명에 진땀을 흘렸다. "업무추진비에서 집행해야 할 비용을 일반 수용비 예산에서 집행했다는 절차상 잘못을 지적한 것이며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감사원 공보관계자는 기자실로 달려왔고, 각 언론사 정치부로 자료를 보냈다.

당사자인 權수석도 기자들에게 "홍보비를 일반 수용비로 사용한 것으로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며 "감사원이 지난해부터 감사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모든 부처는 기관장이 직원들의 경조사나 행사에 사용할 수 있는 '정원가산금'이라는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다. 업무추진비의 일부다.

물론 사용내역과 금액을 구체적으로 적어 제출해야 한다. 이때문에 "직원들의 경조사나 격려성 현금지출에 대해 영수증 증빙이 어렵다"는 權수석의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돈을 다 쓰고 모자라 전용사유서를 제출하지도 않고 사무용품 구입 등에 사용해야 할 공통기본사업비 등에서 기관장 명의의 선물과 화환을 구입한 것도 분명히 잘못이다.

자신들의 감사 결과를 지키기보다는 해명에 안절부절하지 못한 감사원의 처신은 더 볼썽사납다. 감사기능 국회 이전 논의에 대해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항변하던 바로 그 감사원인가 싶다.

이수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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